'대학생 동거' 얼마나 많기에...터키 최대 의제

총리의 개입 방침에 "사생활 침해" 거센 반발

최근 터키 정계와 사회가 남녀 대학생이 한집에서 같이 사는 것을 두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학생의 동거에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의 발언에 각계각층이 헌법에서 보장된 사생활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은 반대 여론에도 굴하지 않고 총리를 필두로 장관들이 가세해 연일 정부의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동거를 테러와 연관지어 단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이슬람에 뿌리를 둔 정의개발당이 대학생 동거를 정치 의제로 키운 것은 최근 집권당이 내년 초 지방선거를 겨냥한 보수 이슬람 지지층을 다지려는 의도하는 해석도 나온다.

◇총리 "동거, 사회가치에 반한다"…내무장관 "테러와 연관"

대학생 동거 논란은 에르도안 총리가 지난 3일 열린 정의개발당 비공개회의에서 한 발언을 현지 일간지 자만이 4일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에르도안 총리는 이 회의에서 기숙사가 부족해 남녀 대학생이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데 이는 보수적이고 민주적인 정부에 반하는 것이라며 주지사에게 사찰하라고 지시했다.

이 짤막한 보도에도 야당과 언론,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정부가 사생활을 침해하려 한다는 거센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뷸렌트 아른츠 부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총리의 발언은 기숙사를 늘리라는 취지였다며 민간 주택까지 정부가 단속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해명이 나온 다음 날인 5일 에르도안 총리는 정의개발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정부의 개입 방침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런 곳(남녀 대학생이 함께 사는 집 등)은 뒤죽박죽으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며 "보수적이고 민주적 정부로서 개입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6일에는 "사회적 가치에 반한다"면서 남녀 대학생이 민간 주택에서도 함께 사는 것을 막는 법규를 정부가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신 딸이 동거한다면 용납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총리가 개입 방침을 더욱 강경하게 내세우자 총리 발언을 해명했던 아른츠 부총리도 6일에는 "우리 모두가 부모이며 정의개발당은 보수적이고 민주적 정당임을 내세워 표를 얻었다"면서 개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무아메르 귤레르 내무장관은 "우리는 이 의제를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란 관점으로 보고 있다"면서 테러 단체나 불법 조직이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등을 위주로 신규 조직원을 발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귤레르 장관은 "최근 경찰이 수행한 작전을 보면 젊은 남녀가 한집에 살면서 폭탄 제조법이나 총기 사용법을 배웠으며 체포한 용의자 가운데 31명이 여자였다"면서 대학생이 사는 집에 경찰이 감시하는 법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부 아흐메트 외즈딘치 자문관도 "최근 여학생의 낙태가 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총리의 개입 방침을 지지하고 나섰다.

남부 아다나주의 휴세인 아브니 코시 주지사는 6일 총리의 지시에 따라 주 당국은 필요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거 개입 규제는 위헌"…집권당 안에도 반대 목소리

정부가 대학생이 공립 기숙사가 아닌 민간주택에서 함께 사는 것도 규제하려는 움직임에 법률 전문가뿐만 아니라 집권당 내부에서도 위헌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스탄불 빌기대학의 투르구트 타르한르 헙학과 교수는 7일 휴리예트와 인터뷰에서 총리의 발언은 헌법 20조에서 보장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터키인권협회 외즈튜르크 튜르크도안 대표는 총리가 대학생의 동거 문제와 관련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발언한 것은 이미 학생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이라며 이런 정보가 총리에게 전해진 배경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 케말 크르츠다로울루 대표는 에르도안 총리의 궁극적 목표는 남녀 공학을 없애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국가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의개발당 출신인 제밀 치첵 국회의장은 구체적인 언급은 거부했으나 "법치 국가에서 법에서 금지하지 않은 행동은 자유롭게 해도 된다"고 말해 정부가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시사했다.

집권당 소속인 젤키프 카즈달 의원은 "1천년 전부터 형성된 인권인 거주지 불가침 원칙에 어긋나며 만 18세가 넘으면 성인이므로 '학생의 집'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이드리스 발 의원 역시 "다음에는 결혼하지 않고 사는 남녀의 집에도 개입할 것인가"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친정부 성향의 일간지인 사바의 메흐메트 바를라스 칼럼니스트 역시 에르도안 총리 지지자로 알려졌으나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가가 뒤에 있는 보수주의는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유럽연합(EU)도 6일 발표한 성명에서 "에르도안 총리가 최근 발표한 '민주화 종합개혁안'에서 사생활 보호를 강화한다는 방침을 기억한다"며 "(동거 문제는) 학생과 부모가 선택하는 것으로 유럽에서는 이와 관련한 규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정계에서는 이런 거센 반발이 예상됐음에도 에르도안 총리가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내년 3월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이슬람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 9월 말에 발표한 민주화 종합개혁안에서는 여성 공직자의 이슬람식 두건(히잡) 착용금지를 폐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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