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재즈는 물론이고 음악 자체를 별로 즐겨듣지 않던, 건조한 심장을 가진 내가 약 3년 전 '올 댓 재즈' DJ가 됐다. 별 수 없이 재즈를 듣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러다 서서히 좋은 감정이 생기더니 어느새 음반을 찾아듣고 이제는 틈만 나면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 됐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악기의 울림과 연주자와의 교감. 그 황홀한 만남의 순간을 늘 그리워하는 지독한 짝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토록 어려운 사랑이 있을까. 가까이 갈수록 멀게만 느껴지고 갈증은 더 커져만 간다. 나처럼 목마른 청취자들을 위해 가요, 팝 프로그램과 달리 '올 댓 재즈'에서는 라이브실황 녹음을 자주 선곡한다.
같은 곡, 같은 연주자의 연주라도 어디에서 연주하느냐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와 새로운 느낌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재즈. 관객의 호응과 박수소리마저 음악의 일부가 되어 세상에 하나뿐인 음악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라이브 녹음을 들으며 눈을 감고 그려보던 뉴욕의 재즈클럽! 일주일간의 휴가를 아깝지 않게 바치고, 반 하루가 넘는 시간을 가뿐히 건너 그 곳으로 갔다. 그리고 벅찬 만남의 순간들...
실제로 존재하는 자리에 앉아 냄새를 맡고, 숨소리를 보태고, 울림에 반응하며 그렇게 우린 함께 있었다. 휴가는 끝났고 뜨거운 연애가 끝난 것처럼 허전함에 아플 지경지만, 눈과 마음에 담은 것들을 나눌 '올 댓 재즈' 청취자들이 있어 후유증은 금방 나을 것 같다.
가을의 뉴욕에서 만난 블루노트(Blue note),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 디지스 클럽(Dizzy's club)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전한다.
■ Blue Note - Stanley Clarke with Harlem String Quartet
(Stanley Clarke-bass, Michael Mitchell-d, Beka Gochiashvili- pIlmar Gavilán-violin, Melissa White-violin, Jaime Amador-viola Matthew Zalkind, cello)
줄이 길지 않아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겠다 했는데, 웬걸! 들어가 보니 이미 거의 만석이라 자리를 찾아 앉는 것도 쉽지가 않다. 훨씬 일찍 도착해서 저녁식사를 하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넓지 않은 홀에 테이블 사이 간격도 좁고 무조건 합석이다.
브라질에서 여행을 온 중년의 부부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안내되었는데, 커플들 사이에 끼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어색하게 눈인사를 나누고 최대한 옆 사람과 닿지 않으려 자세를 취해본다. 커버차지(cover charge: 자릿값)가 45불이나 되는데, 좌석이 너무 불편한 것 아닌가... 하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공연이 시작되면서 그런 마음은 스르르 사라지고 만다.
무대는 한참 후배 연주자들과 함께였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스트링 쿼텟인 할렘 쿼텟들은 20-30대로 보이고 피아니스트와 드러머는 17~18살 정도라고 했다. 그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연주하는 그의 모습도 청년처럼 보였다.
피터팬이 후크선장의 배를 날듯이 자유롭게 건너다니듯 그의 손가락이 베이스 위에서 빠르게 춤추고 있었다. 아름답고 힘 있는 현의 어울림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설렘이 증폭되며 뉴욕에 있다는 걸, 꿈속으로 들어 왔다는 걸 실감했다.
■ 블루노트(www.bluenote.net)는 오후 6시에 문을 열고 하루에 두 번(8:00pm,10:30pm)공연이 열린다. 입장료는 대략 Bar-$15~30, Table $25~45 정도인데 그날 출연하는 뮤지션에 따라 가격차이가 난다. 출연 스케줄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예약할 수 있다. 음료나 식사는 추가로 주문해야 한다.
(재즈클럽 빌리지 뱅가드(Villiage vanguard) 이야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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