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곰 군단의 숨은 공신은 백업에서 주전으로 거듭난 안방마님 최재훈(24)이다. 준플레이오프(PO)와 PO에서 모두 넥센, LG에 비해 열세였던 불펜을 이끌고 KS에 진출하는 반전 드라마를 썼다.
▲빼어난 투수 리드로 KS 1, 2차전 승리 견인
막강 불펜 삼성과 맞붙은 KS에서도 마찬가지다. 1차전에서 선발 노경은이 초반 난조를 딛고 승리투수가 된 것도 최재훈의 존재가 뒤에 있었다. 최재훈은 "초반 경은이 형에게 한가운데로 던지더라도 직구로 제구를 잡으라고 했는데 투구수 70개 이후 좋아졌다"고 말했다. 노경은은 6⅓이닝 7탈삼진 4피안타 1실점 호투를 펼쳤다.
25일 삼성과 KS 2차전 연장 13회 승리도 최재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두산은 경기 후반 잇딴 위기를 맞았다. 1-0으로 앞선 8회는 동점타를 내주며 역전 위기까지 몰렸다. 연장 10회 1사 만루, 11회 1사 1, 3루 등 끝내기 상황까지 맞았다.
하지만 두산은 모든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겼다. 최재훈과 불펜 투수들이 삼성 타자들의 범타를 유도해낸 때문이었다. 최재훈은 8회 위기에서 핸킨스와 함께 각각 이승엽, 김태완을 내야 땅볼로 잡아냈다.
연장이 압권이었다. 1사 만루에서 이승엽을 상대로 최재훈은 구원 투수 윤명준에게 과감한 몸쪽 승부를 요구해 2루 땅볼을 이끌어냈다. 11회 1사 1, 3루에서는 정재훈과 함께 정형식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12회도 채태인, 이승엽 등 간판 좌타자들이 정재훈의 몸쪽 직구에 서서 삼진을 당했다.
결국 두산은 13회 오재일의 결승 홈런과 상대 실책, 손시헌의 2타점 적시타가 터지면서 짜릿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최재훈과 불펜이 최강 마무리 오승환을 상대로 무실점으로 버텨준 덕분이었다.
▲"경기 끝나면 녹초…그래도 만족은 없다"
이번 PS에서 최재훈은 안정된 투수 리드와 강력한 블로킹 솜씨 등 후보라 하기에 믿기 어려운 활약을 펼치고 있다. 넥센과 준PO 3차전에서는 3번 모두 상대 도루를 저지하는 강견을 과시했다. 4차전에서는 역전 결승 홈런으로 경기 MVP에 오르는 등 녹록치 않은 방망이 솜씨까지 보였다.
최재훈은 이번 PS 최고의 신데렐라다. 2008년 신고 선수로 입단한 최재훈은 2군 리그 경찰청 등을 거쳐 지난해에야 비로소 백업 포수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69경기, 올해 60경기에 출전에 그쳤다.
하지만 주전 양의지가 허리 부상 후유증을 겪은 틈을 타 주전 마스크를 단단히 꿰찼다. 준PO 2차전 이후 줄곧 두산 안방마님으로 팀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적잖은 야구 관계자들이 "준PO와 PO MVP는 사실 최재훈"이라고 입을 모은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준PO 흐름을 바꾼 선수"라면서 "두산 분위기를 이끄는 최재훈의 존재가 부담스럽다"고 인정할 정도다. 배영섭, 강명구 등 삼성 준족들도 "도루 송구는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에 대해 일단 최재훈은 "그렇게 봐주시면 영광"이라면서 "개인 명예보다 팀 승리가 중요하다"며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3번의 연장을 치른 넥센과 준PO, 잇딴 환상적 블로킹을 선보인 LG와 PO 등 체력 소모와 부상 후유증도 적지 않을 터. 최재훈은 "경기 끝나고 숙소로 가면 바로 쓰러진다"면서 "링거도 2번이나 맞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최재훈은 "지금이 선수 생활의 전성기인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지금 내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만족할 수는 없다"면서 "팀이 우승할 때까지, 또 개인적으로도 더 발전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이를 앙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