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치마를 들치니 옆구리 밑과 무릎 부근에 하얀 뼈가 드러나 있고 파리떼가 까맣게 소녀의 뼈를 덮고 있었다.
목사는 파리떼가 산 소녀의 다리에 알을 낳아 구더기가 생겼고 그 구더기가 살을 파먹어가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함께 간 한국인 목사가 소녀의 살 속으로 파고드는 구더기를 하나하나 손으로 잡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인 목사는 소녀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죽어가던 소녀는 말없이 하얀 눈동자를 굴리고 목사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목사는 소녀가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지만 두 달 뒤 소녀는 숨을 거뒀고 그가 촬영한 컬러 사진만이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소녀의 안타까운 삶을 증언하고 있다.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는 1968년 여름 처음 한국을 방문해 청계천 빈민가의 참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1980년대 중반까지 50여 차례 서울을 오가며 한국 빈민선교에 나섰다.
당시 청계천 끝 자락에 있던 송정동 활빈교회의 구제와 선교사업을 도왔던 그는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청계천변 판자촌의 모습과 그곳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일본 강점기 일본이 한국인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해 속죄하는 심정으로 한국을 돕는데 앞장서온 그는 2006년 평생 모은 청계천 관련 사진 스크랩북과 메모, 한국 지도 등 800여 건의 자료를 서울시에 기증했다.
모토유키 목사는 최근 청계천과 도시빈민의 역사를 한국인에게 더 널리 알리고자 눈빛출판사에 조건 없이 3천여 컷의 사진도 제공했다.
이 가운데 청계천 판자촌의 모습만 골라낸 500여 장의 컬러 흑백사진을 엮은 사진집 '노무라 리포트'가 최근 출간됐다.
같은 시기에 촬영한 1970년대 한국 민중의 애환이 담긴 사진도 내년에 사진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모토유키 목사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라는 제목의 서문에 "한국의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을 촬영한 것이기 때문에, 이 사진을 당연히 한국인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다시 한번, 일본이 한국에 범한 그 무서운 침략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죄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오는 28일 서울시로부터 명예서울시민증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