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중세의 기독교적 사고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이성과 과학적 사고의 가치를 퍼뜨린, 서양의 근대를 열어젖힌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이러한 르네상스적 사고를 우리 역사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신간 '조선 르네상스'는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했다.
전문미술해설가인 이 책의 지은이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재미있게도 서양의 르네상스 시대와 조선 시대는 연대상 일치한다. 오히려 서양의 르네상스가 조선 왕조 500년의 장구한 세월보다 먼저 문을 닫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 시기 유럽이 겪었던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화, 이념의 갈등, 그리고 전쟁을 조선도 똑같이 경험했다. 이 시기를 나는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이 책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있었다면 조선에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한, 생생한 묘사와 과감한 생략을 통해 작가의 정신과 의지를 오롯이 담아낸 '윤두서 자화상'에 대한 설명을 보자.
'그의 눈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 왠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할 만큼 눈빛이 매섭다. 그의 수염 한 올, 한 올은 윤두서의 성품을 드러낸다. 그 기운을 드러내는 데 딱 만족한 그는 밑그림에 존재했던 몸통을 묘사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걸로 족한 것이다. 종이에 먹으로 그린 이 그림에서 윤두서는 자신과 외형적으로 똑같은 인물을 묘사하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세계도 그대로 반영해냈다. (54쪽)'
이렇듯 이 책은 서양의 르네상스 작품과 조선 시대 미술 작품들의 비교 분석을 통해 조선 르네상스의 다양한 면면을 길어 올린다.
이는 사회주도층의 사상과 대중의 의식이 한데로 어우러져 문화의 절정기를 일궈냈던 것이어서 더욱 남다른 가치를 지녔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모험이 필요했던 것이 서양인데, 오히려 우리의 선조들은 사물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즉 주관마저도 객관화함에 주저함이 없다. (중략) 이것이 대중의 눈높이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삶을 살아가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기인한, 조선 지식인의 삶의 태도다. (68쪽)'
결국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교회의 권력과 통치자의 재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탓에 자신의 예술세계를 맘껏 펼치지 못했다면, 조선의 예술가들은 권력에서 빗겨나 자유롭게 작품을 생산하는 동시에 소비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문화는 오래 전부터 대중성을 바탕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켜켜이 쌓여 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조선의 민초들이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것처럼, 근대 이후 대한민국 또한 새롭게 재건되었다. 여기에도 여지없이 대중성이라는 시대정신이 작용한다. 조선 르네상스는 대중성을 등에 업고 진행되었다. 대중이 만들어가고 대중이 즐기는 이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를 반영하여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기도 하지만, 그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히 대중의 취미가 반영된다. (1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