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와 국민들의 평가는 여야 모두에게 박하다. '야당의 장(場)'인 국감에서 야당의 성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고, 여당은 행정부를 엄호하기에 바빠 입법부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야당이 국정감사 1주일 동안 가장 내세울 만한 성과는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댓글 의혹 제기다.
지난 15일에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감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사령부 직원 4명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대선개입 여부를 추궁해 군이 합동조사에 들어가게 했다.
또 기초연금, 4대강 사업, 교학사 교과서 우편향 논란 등 현안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져 국면 전환의 계기가 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는 국민연금과 연계한 정부의 기초연금안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의 일방적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민주당은 14일 보건복지부에 대한 복지위 국감에서 정부가 급작스럽게 기초연금안을 발표하면서 주무부처 수장인 진영 전 장관의 결재없이 발표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4대강 사업 부실 책임론을 둘러싼 여야 공방 속에 감사원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를 검토했을 만큼 4대강 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거듭 확인하기도 했다.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감에서 감사원 김영호 사무총장은 '4대강 감사가 이 전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결론을 냈는데 동의하냐'는 민주당 이춘선 의원의 질문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검토했지만 사법처리 대상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답했다.
또 1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박근혜정부 교육계 인사들의 '우편향 경력'이 도마에 오르며 기관장으로서의 자격 문제가 집중 부각됐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의 아들이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폭로하며 사퇴를 압박했다.
이튿날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배용 원장이 우편향 논란이 일고 있는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한 데 대해 집중 추궁당하자 일부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 與 행정부 견제 역할 미흡, 野 효율적 대안 제시 부족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여야가 국감을 정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양승함 연세대 교수는 "국감 1주일 동안 여야가 실질적인 정책 감사보다는 정치적인 논쟁을 벌인 것이 문제였다"며 "야당은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갈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전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NLL 포기발언', '사초폐기' 논란 등으로 여야간 오랜 정쟁으로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도 중간 성적이 안 좋은 요인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국감은 야당의 텃밭인데 민주당이 이번에 원내외 병행투쟁을 하느라 국감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대형 이슈를 만들지 못하는 등 부실이 예정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또 "피감기관이 역대 최다인 628개인 것도 부실 국감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면서 "공부 안한 학생이 벼락치기를 할 때 온갖 참고서를 다 읽는 것처럼, 증인을 마구잡이로 불러 답변은 2~3분만 듣는 것은 국감의 목적에 위배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새누리당이 행정부를 견제하는 본래의 의미를 망각하고 입법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점도 공통적으로 지적됐다.
신율 교수는 "국감의 목적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라며 "행정부 견제에 있어 여야가 있을 수 없는데 새누리당은 행정부를 너무 두둔하고 나섰다"고 비판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야당이 국정운영을 비판하거나 전 정부에 대한 의혹 제기를 할 때 여당은 정부에 전달하거나 근거 있게 변호하는 기능을 해야하는데 현장에서 야당과 맞붙어 싸우는 모습만 보였다"고 꼬집었다.
여론의 시선도 따갑다. 한국갤럽이 국감이 시작된 14일부터 17일까지 성인 1215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이 제 구실을 못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새누리당이 여당으로서 할 일을 제대로 잘하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잘한다'가 31%, '못한다'는 53%로 비판적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한 달여 전인 9월 둘째주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잘한다'는 7%p 줄고, '못한다'는 7%p 증가했다. (오차범위±2.8%포인트)
민주당의 야당 역할 수행 평가도 심각하다. 야당 역할을 잘하는지 묻는 질문에 긍정과 부정 평가가 각각 12%와 77%였다. 특히 부정 평가는 한 달여 전보다 5%p 늘었다.
한국갤럽 관계자는 "이번 정부 첫 국감을 맞아 여야 모두 정쟁 중단을 언급했지만 그간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했던 문제들이 또다시 부각되며 정쟁의 장으로 흐른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