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주민들이 텐트치고 노숙 들어간 까닭

세입자 "건물 철거 들은 적 없어" vs 지주 "건물주와 해결하라"

한 건물에 건물주와 지주가 서로 달라 소송이 벌어졌던 빌라에서 이제 세입자와 지주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 2라운드가 벌어지고 있다.

◈"철거되지 않을 거란 말만 믿었는데…"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빌라 현관 앞에는 지난달부터 천막이 세워졌다.

천막의 주인은 지난달까지 이 빌라에 전셋집을 얻어 살던 세입자 6세대. 이들은 건물주와 지주 사이의 고래 싸움에 자신들의 새우등만 터져 집을 잃었다고 하소연한다.

문제는 건물주 최모 씨와 지주 원모 씨가 대립하면서 시작한다. 건물주가 토지까지 사들이려 했지만 지주가 이를 거부했고, 그 와중에 건물주가 지주에게 토지임대료를 미지급했던 게 화근이었다.

지주는 건물주를 상대로 토지임대료 및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 승소한 데 이어 건물철거 소송까지 승소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11년 5월 이미 건물 철거가 확정됐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하다가 지난해 10월 건물 명도 재판이 벌어지면서 점유 금지 가처분을 받은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건물주가 패소와 함께 사업에도 실패해 재산을 크게 잃는 바람에 세대마다 1억 3000여만 원인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건물주가 미지급된 보증금 대신 건물에 대한 권리를 세입자에게 넘기기로 약속했지만, 이번에는 세입자와 지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주는 철거해야 할 건물에 불법입주한 셈인 세입자들에게 "2000만 원을 챙겨줄테니 빌라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세입자들은 돈을 모아 밀린 토지임대료를 갚고 땅까지 사겠다고 제안했지만, 지주는 이미 지난해 9월 백모 씨에게 토지를 팔기로 약속하고 가계약금 1억 원까지 지급했다며 거절했다.

세입자들이 위약금도 보장하겠다고 말했지만 지주는 이미 매매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자신의 손을 떠났다는 입장이다.

이번에는 토지를 사들일 백 씨에게 7억 5천여만 원에 땅을 사겠다고 말했지만, 백 씨는 토지 가격으로 12억여 원을 요구하고 있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그새 지난 7월부터 두 달 동안 퇴거명령이 집행되는 바람에 세입자 모두 길거리에 나앉고 말았다.

천막을 지키던 김모(51) 씨는 "밖에 나가면 천막 걱정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직장에는 병원에 간다고 하고 텐트를 지키러 나왔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온갖 핑계를 대며 천막에 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모(45·여) 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이야기에 목부터 메였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의 인생이 바뀔 수 있으니까 선처해달라고 울면서 매달렸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 뿐이었다"며 "재수생이 있는 집은 수능날까지만 봐달라고 했지만 결국 집을 비워야 했다"고 말했다.


◈"소송 문제는 계약서에 다 나온 얘기…"

하지만 건물주와 지주, 그리고 토지를 새로 사들일 백 씨는 세입자들의 주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건물주는 "세입자들에게 건물주와 지주가 다르다는 점부터 소송 때문에 건물이 철거될 수도 있다는 사실 등을 모두 고지했다"며 "만약 내가 이 사실을 숨겼다면 사기 혐의로 고소해야 할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고지도 했을 뿐 아니라 7년이나 소송이 이어졌고 철거 판결도 지난 2011년 내려져서 주변 부동산에 소문이 다 퍼졌는데 세입자만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얘기다.

지주와 백 씨도 "임대차계약서에 이미 관련 사실이 다 적시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세입자들이 억울하다면 전세 임차 계약을 맺은 건물주나 당시 계약을 맺은 공인중개사에게 따져야 하는데 왜 토지를 문제 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세입자들이 건물주의 재산 상태를 정확하게 확인해서 전세보증금을 받아내고 새로운 전셋집을 구하면 된다는 논리다.

오히려 이들은 애초에 관련 사실을 다 알리고 당시 주변 시세보다 낮게 전세보증금을 받았기 때문에, 세입자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싼값에 전셋집을 마련하기 위해 입주했다고 주장했다.

세입자들이 토지를 사겠다는 요구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주가 건물을 철거하려는 마당에 세입자들의 희망대로 건물은 남겨 낮은 가격에 매매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백 씨는 "세입자들은 철거 등 각종 비용을 고려하면 자신들이 제시하는 토지 가격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시장에 내놔봐야 적정 가격을 아는 것 아니냐"며 "토지대금도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세입자에게 굳이 토지를 되팔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지주와 백 씨는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갈 곳이 없는 세입자들이 현실성도 없는 토지 매입을 핑계로 시간을 끌면서 다시 빌라에 입주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얘기다.

백 씨는 "세입자가 행정기관과 지역 정치인 등에 알리면서 온 동네에 나만 나쁜 사람으로 매도되고 있다"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세입자를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왜 이런 취급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백 씨가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입자들을 상대로 불법 토지 점유로 고소하기로 하면서 세입자와 건물주, 지주, 토지매입자간 삼각 갈등은 한층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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