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개인은 수입 안에서 지출을 해야 한다. 수입으로 감당할 수 없으면 지출을 절제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국가는 지출을 위해 수입을 결정한다. 개인과 달리 수입이 부족하면 세금을 더 징수하기도 하고, 국채를 발행하기도 한다.
경기가 나쁠 때 지출을 늘리는 경우도 있다. 정부까지 지갑을 열지 않으면 소비가 살아나지 않아 경기가 더 침체할 가능성이 커서다. 이게 바로 1930년대에 등장한 케인즈 이론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대공황을 극복했다. 우리나라도 1997년의 외환위기를 긴축이 아닌 적극적 재정지출로 극복했다.
그러나 모든 지출은 관성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번 늘어난 규모를 줄이기 힘들다. 그동안 정부가 결산을 통해 발생한 잉여금을 추가경정예산으로 쓰려 한 적은 있어도 채무를 상환하려 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예산관리가 어려운 것은 예산에 대해 책임을 지는 주체는 명확하지 않고, 모두가 쓸려고만 하는 '공유지의 비극' 현상 때문이다. 호수에 있는 고기를 모두가 잡기만한다면 고갈된다. 그래서 엄격한 규제와 통제를 필요로 한다.
예산에도 상호견제 장치가 필요하다. 재정위기 때문에 경제위기를 경험했던 각국이 재정규율의 장치를 도입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업이 적절한 채무를 통해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거두면서 성장하듯 정부 역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을 보면서 부채를 관리해야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홈페이지에 가면 국가채무시계가 있다. 현재 시각으로 국가채무는 471조9633억원이다. 실 시간으로 원 단위까지 자세히 나와 있다.
하지만 재정건전화를 지키는 파수꾼임을 상징하는 이 시계가 느린 것인지, 빠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재정규율을 숫자를 통한 통제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예산을 결정하는 과정에 다양한 논의와 합의들이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