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전문위원으로 일했던 김모씨는 2010년 2월 선박부품 납품업체 관계자에게 "아내가 동계올림픽에서 출전한 김연아의 목걸이를 갖고 싶어 한다"며 "김연아 목걸이를 사오라"고 요구했다. "아들이 수능시험을 본다"며 "순금으로 된 50만원 상당의 행운의 열쇠를 사달라"고 하는가 하면 시험 후에는 가족들의 해외여행경비 일체를 제공받기도 했다.
협력업체로부터 주택구입 자금의 일부를 받아 집을 구입한 뒤 주변 시세의 2배나 되는 임대료를 받고 다시 해당 업체에 집을 임대한 사례도 있다. 바로 이모(56) 이사의 경우다.
돈에 눈이 멀어 자신의 어머니를 부인한 차장급 직원도 있었다. 12억원 상당을 수수한 뒤 4개의 차명계좌로 관리하다 이 중 친어머니 명의의 계좌가 적발되자 검찰 수사관에게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정한 것이다.
하다못해 말단 대리급 직원의 집에서 5만원권 현금뭉치 1억원이 발견되는 상황 앞에서는 협력업체로부터 신용카드를 받아 핸드폰 등을 구입하는 소소한 비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15일 울산지검이 대우조선해양 납품비리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기소한 사람이 모두 30명. 검찰은 이 중 임원급 4명, 부장 차장급 6명, 대리 1명 등 대우조선해양 전·현직 임직원 11명을 구속기소하고, 임원 2명과 부장 1명 등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임직원 12명에 대해 회사에 징계를 통보했다.
이들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이 지난 2008년부터 올 2월까지 이른바 '갑'의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로부터 뜯어 낸 돈이 모두 35억여원이나 된다. 1인당 평균 2억원을 넘으니 최근 발생한 원전비리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긴 셈이다.
이에 대해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구속 기소된 사람들의 소속이 대부분 다르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회사의 조직적인 비리가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의 비리"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조선업계 빅 3의 업체 임직원으로서 회사 측으로 부터 많게는 억대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상무 등 임원급은 물론, 부장 차장에서 말단 대리까지 온갖 직급의 직원들이 '을'에 해당하는 협력업체로부터 돈을 받아 챙기는 등 부패의 행렬에 동참했다는 것은 대우조선해양의 도덕적 수준을 방증하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관행이 새삼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특히 2008년부터 올해까지 6여년에 이르는 긴 기간 비리가 계속됐는데도 회사 내 자체 감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은 결국 이번 비리가 '시스템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요컨대 "주인 없는 회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아무리 드릴십 등 최첨단 선박의 제조 능력을 갖췄다고 해도, 협력업체를 상대로 한 납품 비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또 이것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 현 시스템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들여 부도 위기에 놓인 기업을 '대우조선해양'이라는 이름의 회사로 살려놨지만 결국 드러난 양태는 '갑을 권력관계'를 톡톡히 행사하는 '비리 백화점'과 다를 것이 없다"며 "현 경영진은 물론 국책은행으로서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도 관리 감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이 31%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남상태 전임 사장에 이어 고재호 사장이 지난해 3월 취임해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한편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던 지난 9월에 이미 반부패 선언식을 갖고, 구매부서 직원과 가족의 금융거래 정보를 공개하는 등 대대적인 내외부 자정활동을 펼치고 있다"며 조만간 보다 구체적인 '윤리 액션플랜'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