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날은 연장으로 가기 전 두산의 승리로 끝났어야 했던 경기였다. 그게 두 팀 모두에게 득이 되는 쪽이었다. 넥센으로서도 깔끔하게 3차전을 마무리하고 4차전 반격을 준비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산이 승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넥센에 희망을 줬고, 결국 두 팀 모두 어떤 관점에서는 불필요한 소모전을 치러야 했다. 특히 LG가 선착한 PO를 도모하기 위해 필수적인 불펜의 부담이 컸다.
게다가 12일 4차전 선발은 문성현(넥센)과 이재우(두산). 모두 긴 이닝을 바라기는 쉽지 않은 투수들이다. 특히 이재우는 팔꿈치 부상 경력이 있다. 경기 중후반 불펜 역할이 클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두 팀의 승부를 힘들게 만든 것은 두산의 1, 2차전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두산은 3차전에서 두 번의 승부처에서 실패를 맛봤다. 7회 투수 교체 타이밍과 5회 추가점 기회였다. 둘 중 한번이라도 성공했다면 9회에 경기를 끝낼 수 있던 터라 더욱 아쉬운 장면이었다.
▲'1차전 번트 실패' 김재호, 3차전 강공
먼저 추가점 기회 상황. 1회 김현수의 희생타, 4회 최준석-홍성흔의 백투백 홈런으로 3-0으로 앞선 두산은 5회 추가점을 낼 호기를 맞았다. 선두 최재훈이 안타로 출루한 것. 두산의 불펜을 감안할 때 3점 리드가 불안한 상황에서 1점이 절실했다.
하지만 9번 김재호 타순에서 두산은 번트가 아닌 강공을 택했다. 결국 김재호는 중견수 뜬공에 그쳤고, 후속 이종욱의 병살타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았다. 경기 전 김진욱 감독이 "상황이 되면 번트를 대겠다"고 말한 것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더욱이 9번 타순이었다.
결과론이지만 두산이 만약 여기서 착실하게 번트에 이어 1점을 냈다면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7회 3점 홈런을 내줬다 해도 4-3 리드를 지켰을 터였다. 경기 후 김감독은 "나중에 동점 홈런을 맞고 나니 5회 실패가 아프게 다가오더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작전 배경에 대해서는 "김재호가 넥센 선발 오재영과 승부를 잘 해왔고, 전 타석에서도 잘 맞은 타구를 날렸다"면서 "또 볼 카운트가 워낙 좋았다"고 설명했다. 김재호는 올해 오재영에게 1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3차전 5회 당시는 3볼에서 스트라이크를 하나 본 뒤 타격했다.
1차전 작전 실패의 부담감이 컸을 대목이다. 당시 두산은 2-2 동점을 이룬 2회 1사 3루 김재호 타순에서 스퀴즈 번트 작전을 냈지만 실패했다. 3루 주자가 정수빈 빠른 주자여서 해볼 만한 작전이었지만 비가 와 젖은 그라운드에서 타구가 구르지 않으면서 아웃됐다.
▲'불펜 불안'에 노경은 고수하다 동점 홈런
두 번째 승부처는 7회초 투수 교체 시기였다. 6회까지 무실점 역투하던 선발 노경은이 이상 기후를 보였다. 이택근에게 내야 안타, 박병호에게 볼넷을 내주고 무사 1, 2루에 몰렸다. 앞서 박병호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낸 노경은이었기에 더 불안했다. 투구수도 98개, 100개에 육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산은 노경은으로 밀고 나갔다. 결국 노경은은 김민성에게 동점 3점 홈런을 내준 뒤 고개를 떨궜다. 곧바로 변진수로 투수를 교체했지만 이미 동점이 된 이후였다. 변진수가 9회까지 3이닝을 2탈삼진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낸 점을 고려하면 더 아쉬운 상황이었다.
여기에도 짙게 드리워진 '1, 2차전의 트라우마'가 확인된다. 목동 원정 1, 2차전에서 두산은 경기 막판 잇딴 필승 불펜들의 난조로 경기를 내줬다. 믿을 만한 요원이 없다 보니 노경은을 밀었고,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또 두산은 이날 14회를 4명의 투수로 막아냈다. 7명을 투입한 넥센보다 적었다. 1, 2차전 불안했던 홍상삼, 정재훈 등은 투입되지 않았다. 좌타자 등 상황에 따라 잘게 계투진을 운용하기 어려운 두산 불펜의 현 주소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김감독은 이날 불펜 운용에 대해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를 현재로서는 낼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 마무리는 정재훈이지만 이기는 상황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다른 투수들이 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3차전을 연장 끝에 이기긴 했지만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를 보인 두산. 과연 1, 2차전의 트라우마를 털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