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언론계에서 벌어진 오보 소동을 살펴보자.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농성 현장이다. 주민들은 공사현장에 움막을 짓고 농성을 벌여왔고 최근엔 구덩이를 파고 목줄까지 걸어 평생 살아온 고향에서의 생존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결의를 보였다.
뉴스통신사인 ‘뉴시스’는 지난 6일 “단장면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무덤처럼 생긴 구덩이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판 것으로 전해졌다... 구덩이를 파는데 주민 2명이 일부 거들었고 목줄을 맨 것도 통진당 당원인 것으로 전해졌다’는 주민과의 인터뷰를 인용한 기사를 전했다.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의 설명은 다르다.
‘옆 마을인 부북면에서 주민들이 구덩이를 파고 목줄을 걸며 저항에 나서는 걸 보고 동화전 마을 청년들이 그 전날부터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마을 노인들도 거들고 나섰는데 그 날 지지 방문 왔던 통합진보당 경남도당 당원들이 움막터를 만드는 줄 알고 구덩이 파기를 잠깐 도왔다. 주민들이 구덩이에 들어가 목줄을 거는 걸 보고서야 무덤인 줄 알았다.’
◈ 뉴시스의 종북 반전?
그렇다면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구덩이 파고 목줄을 걸었다는 기사는 어떻게 나오게 된 걸까? 기사에는 ‘주민 등에 따르면...’이라고 되어 있다. 그 날 뉴시스가 내보낸 2건의 기사를 비교해 읽어보니 의심스러운 부분이 발견된다.
뉴시스 10월 6일 12시 55분 발 기사에는 구덩이를 파고 목줄을 건 것이 통합진보당원이 아니라 주민들임을 뉴시스가 확인한 사실이 드러나 있다.
“... 한전과 경찰 등에 따르면 구덩이는 전날 반대주민들이 만든 것으로 외부단체 참가자들이 힘을 보탰다. 경찰은 반대 주민들이 결사항전의 뜻으로 구덩이를 파고 목줄을 걸고 휘발유를 준비한 것으로 보고 주민들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경찰력을 배치하기로... ”
경찰과 한전 측에 확인한 내용이고 대책위원회가 설명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런데 3시간 뒤 기사 내용은 이렇게 바뀐다. 10월 6일 16시 09분 발 기사이다.
“... 주민 등에 따르면 구덩이는 통진당 당원들이 만들었다. 목줄을 맨 것 역시 통진당 당원들이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과 한전에게 확인했던 기사를 일부 주민이 전해 준 이야기라며 고쳐 썼다. 그렇다면 당연히 경찰·한전과 맞서고 있는 주민 대표기구인 대책위를 찾아가 확인했어야 하나 대책위는 찾아가지 않았다. 그냥 일부 주민만 믿고 따라갔다. 왜 대립하고 있는 양측 공식기구의 확인을 무시하고 일부 주민만 맹신하며 따라간 것일까?
뉴시스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 통진당 당원들이 떠난 자리에는 무덤처럼 생긴 구덩이와 지주대, 그 곳에 걸린 목줄과 휘발유가 담긴 페트병이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었다.”
아무리 그리 보지 않으려 해도 통합진보당을 겨냥해 뒤집어 다시 쓴 티가 역력하다. 사건 취재보도의 기본 중 지켜야 할 것은 3가지이다. ‘현장에 더 가까이’, ‘주인공을 만날 것’, ‘주인공 주변 인물을 접해 확인할 것’. 그런데 뉴시스의 이 기사는 주인공, 주인공 주변 인물, 공식대표기구나 공신력 있는 기관의 설명을 외면한 채 써 내려갔다. 그것이 서두른 탓인지 의도된 것인지 묻고 싶다.
조선일보는 뉴시스 오보 12시간이 지난 7일 새벽 3시 관련 기사를 (‘통진당 당원들, 밀양 송전탑 현장에 무덤구덩이 파고 올가미 줄 내걸었다’) 올렸는데 뉴시스보다 더 생생하다. 역시 ‘주민들에 따르면...’이다.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 주변에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무덤 형태의 구덩이를 파고, 밧줄 올가미와 휘발유를 걸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반대 주민의 대치 속에 공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외부 세력으로 개입한 통진당원들이 극렬 행동을 부추기는 도구를 만들어 놓고 간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뉴시스 기사보다 표현이 격해졌다.
‘통진당 당원 30여명이 몰려와 구덩이를 팠다.’ ‘극렬행동을 부추기는’ ‘무덤 구덩이’ ‘올가미 줄’ 등등.
뉴시스와 비슷한 6일 낮에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를 살펴보자. 조선일보 10월 6일. 14시 13분 발 기사이다.
“한전과 경찰 등에 따르면 해당 구덩이는 전날 반대 주민들이 만든 것으로 외부단체 참가자들이 힘을 보탠 것으로 전해졌다.”
뉴시스와 마찬가지로 경찰과 한전이 확인해 준 대로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조선일보 기사 속의 사진이다. 조선일보의 6일 낮 기사 사진은 현장을 언덕 밑에서 위로 찍은 것이다. 그런데 새벽 3시 통진당 관련 기사 구덩이 사진은 플래시를 터뜨려 찍은 밤 사진이다. 다시 말해 조선일보는 무덤구덩이를 찍은 사진이 없었다고 추정된다.
그런데 뉴시스가 통합진보당을 겨냥해 무덤구덩이 기사를 새로 쓰자 아차 싶었던 것일까?! 밤늦게 언덕으로 올라가 사진을 다시 찍어 새벽 3시에 ‘통합진보당이 무덤 구덩이를 팠다’로 기사를 뒤집어 다시 써 내보낸 것으로 추론이 가능하다. 정말 그런 것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나서 ‘TV조선’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자체를 통합진보당이 연계된 종북투쟁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나서서 “기어코 적화통일 혁명 광장의 단두대, 기요틴을 세우겠다는 뜻입니까.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겪고도 이것이 어설픈 해프닝으로 보이십니까. 피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릅니다”라고 주장했다.
밀양송전탑 문제는 주민과 한전 사이의 해결 못한 생존권 보장 문제이다. 밀양에서 피가 흐른다면 생존권을 외치다 공사 강행으로 쓰러질 할머니·할아버지들의 피일 것이다. 종북혁명으로 피가 흐르는 게 아니다.
현장에서 함께 하고 있는 가톨릭신부·수녀들은 스스로 불순한 외부세력임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기꺼이 밀양주민의 외부세력이 되겠다. 우리에게도 배후가 있다. 그 배후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인간의 고통에 색깔과 이념이라니.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우린 그 고통 때문에 여기로 달려왔다.”
사제와 수녀들은 인간의 고통 때문에 달려갔다. 기자들은 무엇 때문에 그리로 달려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