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후퇴' 정국 일거에 뒤집은 '사초폐기' 정국

기록원 미이관, 회의록 원본삭제, 문재인 책임론 등 쟁점 산적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NLL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았다"는 검찰의 발표에 따라 새누리당의 대야 공세가 고조되고 있다. '기초연금 공약 후퇴' 논란에서 순식간에 국면 전환되면서 여야의 공수가 뒤바뀐 양상이다.

'사초(史草) 폐기' 논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논란, '새누리당의 NLL대화록 불법유출' 논란에 이어 지난 7월 여당발 이슈로 등장했다. 이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국정조사' 등 현안에 밀려났다가 검찰발 이슈로 정치판 전면에 부활했다.

◈ 기록원 미이관, '사초 폐기'인가

검찰 발표의 요지는 "참여정부가 국가기록원에 이관한 대통령 기록물 755만건 내에 정상회담 회의록은 없다. 대신 복제 시스템인 '봉하마을 e-지원'에서 회의록을 한 부 복원하고, 별도의 회의록 한 부 더 발견했다"는 것이다.

발표 이튿날인 3일 새누리당은 발표 내용의 앞쪽에, 민주당은 뒤쪽에 각각 방점을 찍은 채 공방을 계속했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은 기자간담회에서 "한마디로 사초를 폐기하고 개인적으로 빼돌렸다는 게 사실로 확인된 것"이라며 "노무현·김정일 회담에서 무엇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려웠기에 애초부터 그 역사를 지워버리려 했는지 고백하라"고 압박했다.

국회 법사위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FM 98.1)에 출연해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있을 수 없는 발언과 태도를 보였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폐기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반론은 "봉하마을 e-지원 사본에서 회의록이 발견됐는데 무슨 사초 폐기란 말이냐"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봉하마을로 가져갔다 반환한 e-지원 사본에 대해 당시 검찰이 "원본과 동일하다"고 밝혔던 점을 근거로 한다.

우윤근 의원 등 민주당 열람위원들은 기자회견에서 "2008년 7월1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 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으로 반환했고, 대화록은 반환한 e-지원 사본에 존재한다. 따라서 '사초 실종'이라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주장은 허구"라고 말했다.


김한길 대표도 "여당이 사전 입수해 지난 대선 때 유세장에서 낭독한 대화록을 실종됐다고 한다면, 그 대화록은 무엇이었느냐"고 역공을 취했다.

◈ 삭제본 복원, 불리한 내용 '마사지'했나

"삭제됐던 회의록을 하나 복원했다"는 검찰 발표 부분은 또다른 논란거리다. 검찰은 이 '복원본'보다 '발견본'이 시간적으로 나중에 작성됐고, 둘은 형식과 내용이 동일하지만 "의미있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은 이를 '원본'과 '수정본'으로 규정하고 있다. 원본에서 참여정부에 불리한 표현을 '마사지'해 수정본으로 만들고, 원본을 삭제했다는 논리다.

윤 원내수석은 "원본에는 노 전 대통령 개인적으로나 대통령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표현이 있어서 그런 표현을 수정해 수정본만 남겼을 것"이라면서 "현행법은 이같은 원본도 당연히 보존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7조 제1항은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한 '모든 과정' 및 결과가 기록물로 생산·관리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반면 두 판본의 관계를 '초안'과 '최종안'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의 녹취록을 토대로 작성된 초안에서 잘못된 부분을 교정·첨삭해 최종안이 작성한 다음, 초안을 삭제하는 게 상식이라는 입장이다.

노무현재단은 "최종본이 만들어지면 초안은 삭제되는 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의혹이 있는 것으로 몰아가는 정략적인 행태에 유감"이라고 밝혔다.

◈ 국정원본의 존재, 이것은 왜 남았나

민주당 측의 가장 효과적인 반론은 "조직적 사초 폐기가 맞다면 국정원 보관본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KBS 라디오에 출연해 "국정원에도 남겨놓고 녹취록도 다 있는데, 사초를 은폐하려 했다면 왜 완벽하게 없애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박범계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최소한 노 전 대통령이 NLL대화록을 국정원에 보관하도록 지시한 건 맞다. 후임 대통령들이 손쉽게 참고하라는 선의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검찰도 'NLL 포기발언' 관련 여야의 고소·고발전 수사를 마치면서 "'남북 관계와 관련해 후임자들이 참고하기 편하게 국정원에서 NLL대화록을 관리하라고 노 전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진술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윤 원내수석은 "국정원본이 생산된 2008년 1월이면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청와대 보관본과 달리 쉽사리) 삭제하지 못했던 것일 뿐, 선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반론을 폈다.

◈ 문재인 책임론 공방 등 산적한 쟁점

여야는 이밖에 다양한 주변적 쟁점에서도 격돌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남북 정상회담 추진위원장과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민주당 문재인 의원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문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 "내가 정상회담 회의록을 최종적으로 감수하고, 정부 보존 기록으로 남겨두고 나왔다"고 발언한 바 있다.

반면 민주당은 국가기록원 이관·미이관 문제는 수사로 규명할 일이지 문 의원의 책임을 요구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문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이 회의록에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했을 뿐이고, 실제로 포기발언도 회의록에 없다는 논리다.

공약후퇴 논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논란을 일거에 잠재운 검찰의 수사발표 시점을 놓고도 여야의 신경전이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은 전날 "검찰이 갑작스레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최근 잇따른 국정 난맥상에 대한 국면전환용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더 이상 변명과 궤변으로 국민을 속이는 행태를 중단하라"고 받아쳤다.

아울러 민주당은 지난 대선 유세 때 NLL대화록을 낭독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재촉하며 반격을 시도하고 있어, 이 역시 쟁점으로 부상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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