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태년 의원(경기성남수정)에 따르면 교학사 교과서의 249페이지 우측상단에 실린 위안부 사진에는 “현지 위안부와 달리 조선인 위안부는 전선의 변경으로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돼 있다.
마치 위안부가 일본군을 원해서 ‘따라다닌 것’처럼 서술한 것이다.
이에대해 김 의원은 “위안부 동원과 운영의 강제성을 축소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사진 출처에 대해 교학사 교과서는 구글(포털사이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확인한 결과 이 사진의 원 출처는 ‘무라세 모리야스’라는 일본인이 중국전선에서 운전병으로 지낸 경험을 기록한 「나의 종군 중국 전선」 (『私の従軍中国戦線』1988년 초판발행)이라는 책으로 밝혀졌다.
저자는 이 사진에 대해 1937년 7월부터 1940년 1월까지 운전병으로 복무하며 직접 찍은 사진들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가 위안부가 운영된 시기를 1944년부터라고 잘 못 기술했는데, 정작 교학사 교과서가 인용한 원 출처에는 이 보다 한 참 앞선 시기부터 위안부가 운영됐다고 기술돼 있는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이 사진의 출처를 다음(포털사이트)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진은 1938년 1월 1일 일본육군 최초로 세워진 양가택(楊家宅)이라는 위안소의 모습으로, 원 출처는 당시 위안소에서 성병검진을 했던 산부인과 의사 ‘아소 데츠오’가 1937년 11월부터 1941년 4월까지 근무하면서 직접 찍은 사진으로 확인됐다.
해당 사진의 원 출처에는 “위안소 개설 후 머지않아 2월 24일 밤, 한 명의 위안부가 탈출하고, 군공로에 있던 입초한테 붙잡혀서, 군의 명령으로 본인(아소)이 그 신병인수를 위해 갔다”고 기술돼 있다.
이처럼 위안부 사진의 원 출처는 위안부 운영 시기를 1930년대부터라고 명시하면서 위안부가 강제로 동원됐다는 사실을 한 결 같이 서술하고 있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똑 같은 사진을 인용하면서도 그 같은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김 의원은 “교학사 교과서가 위안부의 운영방식과 시기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인지 아니면 인터넷에서 긁어오다 실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료 확인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만큼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며 “교학사 교과서가 부실하게 만들어진 또 다른 증거가 밝혀진 만큼 검정을 취소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