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교통카드를 등록하려면 어린이 이름으로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는 홈페이지의 안내에 따라 민지 이름으로 가입을 하려던 순간 "아이의 이름으로 실명인증을 하라"는 페이지를 보고 순간 난감해졌다.
민지는 아직 휴대전화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공공 아이핀'이 유일한 실명인증 수단인데, 민지에겐 공공 아이핀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A 씨는 민지 명의로 공공 아이핀을 발급받기로 했지만, 이를 위해선 액티브엑스(ActiveX)와 자바(Java)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했다. 보호자의 실명인증도 필요했다. 몇 차례 오류가 났지만, 인내심을 갖고 무사히 공공 아이핀을 발급받았다.
공공아이핀을 발급받고 나서야 겨우 회원가입에 필요한 실명인증 절차를 마칠 수 있었지만, 아직도 시작에 불과했다. 홈페이지는 또다시 회원 가입 페이지에서 부모의 실명인증도 요구했다.
회원가입을 마친 다음, A 씨는 ‘소득공제’라는 2단계에 돌입했다. 다시 실명인증이 필요하다는 안내가 나왔다.
민지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자 이번엔 "실명등록이 되어있지 않다"며 다시 실명인증을 별도로 받으라는 안내가 나왔다. 아이핀을 방금 발급받았는데도 거듭되는 '실명인증' 요구에 A 씨는 결국 짜증을 참지 못했다.
◈"온갖 실명 인증에 각종 프로그램 설치에…머리가 뱅뱅"
이제는 초등학생들에게도 ‘필수품’이 된 교통카드. 하지만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교통카드에 대한 소득공제를 신청하려면 민지네처럼 상당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린이 실명인증을 거듭 거쳐야 하는데다 각종 프로그램까지 설치해야 하니, "소득공제를 한번 신청해보면 짜증이 밀려온다"는 게 해당 과정을 거쳐본 시민들의 설명이다.
A 씨는 "민지 이름으로 인증하고, 또다시 내 이름으로 인증하고 하다보니 머리가 뱅뱅 돌 지경"이라며 "신용카드를 등록할 때도 이렇게 복잡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만난 주부 양모(35) 씨도 “본인인증을 그렇게 연거푸 해야 하는 게 엄마 입장에선 이해가 안 간다”며 “컴퓨터 앞에서 붙잡고 계속 씨름하는 거 아니냐, 교통카드가 뭐라고 그렇게 번거로운지 모르겠다”고 어이없어했다.
실제로 인터넷 블로그나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에 오전 시간 내내 허비했다"거나 "등록하다가 쌍욕이 나올 뻔했다"는 글까지 불만이 폭주하고 있는 형편이다.
◈업체 “각 실명인증 성격이 달라 번거로운 과정 불가피”
단순히 어린이 교통카드를 등록만 하는 경우엔 홈페이지에서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면 바로 등록이 가능하다. 하지만 소득공제를 받으려면 반드시 홈페이지를 통하도록 돼있다.
소득공제 신청이 이렇게 복잡한 건 해당 교통카드 홈페이지 회원가입과 소득공제 신청시 각각 별도로 실명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어린이의 경우 성인과 달리 실명을 인증할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실명인증 방식은 크게 △공공 아이핀 △휴대전화 인증 △공인인증서 인증 등이 있지만, 어린이가 본인 명의로 된 신용카드나 공인인증서를 갖고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민지처럼 자신의 명의로 된 휴대전화가 없는 어린이가 쓸 수 있는 수단은 ‘공공 아이핀’ 하나밖에 없는 셈이다.
교통카드 관련 업체는 실명인증을 여러 번 거쳐야 하는 과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실명인증의 성격이 각각 다르다는 것.
업체 관계자는 “회원 가입할 때의 실명인증은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차원이고, 소득공제시 다시 실명인증을 해야 하는 이유는 국세청에 신청을 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수집 절차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린이 명의로 회원가입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성인보다 싼 요금이 적용되기 때문에 반드시 어린이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번거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사실 없다”며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복잡한 절차를 직접 경험해본 이들은 "업체 편의에 따라 소비자들만 번거로운 과정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