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母 “혹시 돌려받아도 내 몫은 기부”
- 숨죽여 살면서 죗값 치를것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호정 씨 (민영은의 외손자)
여러분, ‘민영은’이라는 이름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충북 유지였고 군수였고,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친일파였죠. 그런데 2년여 전, 친일파 민영은의 후손들이 청주시를 상대로 ‘청주시가 소유하고 있는 과거 민영은의 땅을 돌려 달라.’ 소송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1심 법원은 민영은 후손의 손을 들어줬고요. 다음 달 항소심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민영은의 외손자가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할아버지 땅을 빨리 돌려 달라.’ 이런 기자회견인 줄 알았더니 정반대였습니다. “땅 찾기 소송을 제발 그만두자.” 이런 내용이었어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그 후손을 직접 연결하겠습니다. 민영은의 외손자, 권호정 씨 연결이 돼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민영은 군수의 외손자와 외할아버지 관계이시죠?
◆ 권호정>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자손을 어떻게 두셨어요?
◆ 권호정>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1남 4녀를 두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위에 이모님이 세 분이 계시고 외삼촌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들은 다 작고하시고요. 지금 저희 어머니만 홀로 남아계시죠.
◇ 김현정> 그러니까 자손들 중에는 권호정 선생의 어머님 한 분만 지금 살아 계시는 상태군요.
◆ 권호정> 유일하게 지금 살아 계십니다.
◇ 김현정> 그런데 어제 청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셨어요. “토지 반환 소송을 취하하라.”
◆ 권호정> 그렇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저희 외삼촌 자손이니까 저한테는 외사촌 형님하고 누님이 되시죠. 이분들이 ‘청주시에 있는 도로의 땅들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냈어요.
◇ 김현정> 그러니까 땅 반환 소송을 후손들 전체가 합심해서 시작한 게 아니군요?
◆ 권호정> 아닙니다.
◇ 김현정> 1남 4녀 중, 1남의 자손들이?
◆ 권호정>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건 아무리 저희가 생각해 본다 하더라도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고요.
◇ 김현정>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 권호정> 왜냐하면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거의 한 세기, 거의 90년 가까이 청주시민들이 그 땅을 밟고 다녔어요. 그런데 그게 어느 날 갑자기 한 평이 되고, 일 점 몇 평이 되고, 열 몇 평이 되는 이런 땅,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이러한 땅을 ‘나는 후손이니까 우리한테 그걸 반환해라. 금전적으로 해라.’ 이렇게 얘기한다는 것이 저는 불합리하고 상식에 어긋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는 이게 벌어질 때부터 예의주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2년 전쯤에 제 아우가... 그 전에 저희 할아버님께서 1940년에 세우신 은성장학회가 지금 73년이 유지되도록 아직 존재해 있습니다.
◇ 김현정> 장학회도 세우셨군요?
◆ 권호정>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청주지역에 많은 학교도 세우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동생이 장학회에 가서 “후손으로서 그 땅 찾는 일에 그렇게 몰두하지 말라.” 그렇게 충고를, 충언을 주고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저희 어머니는 모르시고, 저희만 알고 있었던 건데.
◆ 권호정> 지금 85세시죠. 그런데 제 딸아이가 이런 걸 인터넷에서 보더니 할머니한테 다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저를 부르셔서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좀 보자.” 하셔서 있는 사실을 말씀을 드리고, 인터넷에서 프린팅 한 걸 다 보여 드렸어요.
그러니까 어머니도 굉장히 분개를 하시더라고요.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냐.” 너무 분개하시면서 “너는 왜 가만있느냐.” 그거예요. 제 아우를 또다시 은성장학회로 보냈어요. “어머니도 분개하시고 그러니까 이런 소송을 안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라고 은성장학회를 계속 이끌어 가는 저희 집안 분, 거기한테 얘기를 한 거예요.
◇ 김현정> 그러면 장학회는 친손자가 이끌고 계시는 거예요?
◆ 권호정>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추석 지내고 기자회견을 할 거니까 같이 하자.”
◇ 김현정> 그러니까 ‘우리 같이 기자회견하면서 소 취하하겠다, 발표하자.’ 이렇게 제안을 하셨어요?
◆ 권호정> 그런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전달했죠. 그런데 전혀 연락이 안 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냥 청주시청에 가서 소 취하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기 전에 저희 어머니께서 당부를 하시더라고요. “만에 하나,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겠지만 만에 하나 청주시청이 패했을 때...”
◇ 김현정> 재판에서 패했을 경우?
◆ 권호정> 네. “그 땅에 내 지분이 어느 정도 있는지 알아봐서, 그 지분만큼을 ‘청주시청에다가 기부를 한다’고 얘기를 해라.”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 김현정> 적어도 내 몫만큼은 난 절대 돌려받을 수 없다, 이 말씀인가요?
◆ 권호정> 네. 기부를 하라고 하셔서 알았다고 하고, 청주시청 관계자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법률적인 검토를 하시겠다고 하더라고요.
◇ 김현정> 조금 전에 어머님이 이 소식을 듣고 분개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분개하신 이유는 뭔가요?
◆ 권호정> 그러니까 이런 거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가 무엇을 세상에 내놓고 한다고해서 친일 행적이 지워지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자손들이 계속 갖고 가야 될 부분이에요.
◇ 김현정> 어떤 운명적인 짐이다, 이런 말씀이군요. 자손들의 잘못은 아닙니다마는.
◆ 권호정> 그렇죠. 잘못은 아니지만 자손들이 그걸 가지고 가야 돼요. 그렇게 어두운 부분은 어두운 부분대로 자손들이 갖고 가면서, 또 밝은 부분은 할아버지께서 은성장학회라는 걸 만드셨습니다. 그러면 그 장학회를 소리 소문 없이 우리 후손들이 키우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장학금을 주고, 이런 식의 삶을 살아가는 게 저희의 도리라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 김현정> 그게 도리다. 어떻게 보면 그게 할아버지의 죗값을 씻어 가는 길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계셨던 거군요?
◆ 권호정> 네. 당연한 거죠. 왜냐하면 이런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아직도 그러한 친일문제라든가, 친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피해 입은 많은 분들이 같이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어요. 저희가 보면 정말 독립운동을 하다가 후손들이 정말 이렇게.. 공부도 다 배우지를 못하고, 가난하게 된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분들과 지금 같이 숨을 쉬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숨죽이고 있어야지, 뭐가 잘된 게 있다고. 우리 할아버지 땅이니 반환을 해라, 어째라. 그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이게? 그렇지 않습니까?
◇ 김현정> 이런 생각을 하는 친일파 후손 분이 계시다는 게 저는 지금 놀라울 정도인데요.
◆ 권호정> 아니죠. 이건 당연한 얘기입니다. 상식적인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교육을 받는 게 뭡니까? 이런 상식을 알기 위해서 교육을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잖아요.
◇ 김현정> 지금까지 우리가 봐 온 이른바 친일파 후손이라고 하는 분들은 한 조각의 땅이라도 더 찾기 위해서 반환 소송을 하고, 뭐 이런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 권호정>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는 모르겠고, 지금 저희 일만 알고 있는 건데...
◇ 김현정> 상식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시군요. 만약 이렇게까지 나오는데도 다른 후손들이 소를 취하하지 않고 재판이 계속되고, 결국 그쪽이 이길 경우에는? 어쨌든 법은 법이니까요.
◆ 권호정>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좀 더 기다리고 있다가, 또 장학회를 가서 계속 얘기할 거예요. “소 취하 하라.” 얘기를 할 거예요. 끊임없이 소 취하 하자고 얘기할 것이고요. 그리고 저는 법도 상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법도 상식이라고 생각하고요. 거의 90년 가까이, 그러니까 1세기 가까이 사용된 그 땅에다가 후손들한테 손을 들어주는 그러한 법을 나는 인정할 수 없어요.
◇ 김현정> 그 법을 인정할 수가 없다.
◆ 권호정> 네. 그건 인정 못합니다, 저는.
◇ 김현정> 법도 상식이라는 말씀. 사실 ‘친일파의 후손’ 이라는 멍에를 쓰고, 지금까지 육십 평생을 살아오신 거잖아요. 그리고 어머님은 그것보다 더 긴 세월을...
◆ 권호정> 그렇죠.
◇ 김현정> 그 세월은 또 어땠을까, 저는 이것역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권호정> 글쎄요.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것, 그건 저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요. 단 친일파의 후손이기 때문에 더욱더 바르고 상식적이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 김현정> 그런 의무가 있다고 보시는 거예요?
◆ 권호정> 당연하죠. 그건 의무죠.
◇ 김현정> 그것은 의무다. 자신의 선조가 친일파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또 몰수당한 땅을 찾기 위해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소송을 벌이고 있는 많은 친일파 후손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떤 얘기를 할까, 궁금해지는데요. 권호정 선생님, 오늘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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