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보다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 판매로 돈을 조달해 온 동양은 감독당국과 채권은행의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위기가 현실화하자 당국과 금융권에 손을 벌리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결국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체에 대한 금융권과 감독당국의 감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새어나오고 있다.
◇"제2의 동양그룹 사태 막자"
은행업감독규정은 전년말 금융기관 신용공여 잔액이 그 이전해 말 금융기관 전체 신용공여 잔액 대비 0.1% 이상인 계열기업군(소속기업체 포함)을 '주채무계열'로 정해 금감원이 금융기관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올해는 작년 말 신용공여 잔액이 약 1조6천152억원이 넘는 30곳이 주채무계열로 분류됐다.
현대자동차, 삼성, SK, LG, 현대중공업, 한화, LS, 대우조선해양, 효성, CJ, 동부, 신세계, STX, 금호아시아나 등 웬만한 재벌그룹은 거의 다 들어갔다.
이들 그룹사의 전체 신용공여액은 260조원으로 금융권 총 신용공여액 1천633조원의 15.9%에 이른다.
일단 주채무계열이 되면 주채권은행이 경영정보를 관리하게 되고, 재무구조가 좋지 않을 경우 은행과 약정을 맺어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벌인다.
문제는 대출 대신 CP나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이 많아 주채무계열에 들어가지 않지만 파산하면 적지 않은 파장이 발생하는 기업도 있다는 점이다.
최근 위기를 맞은 동양이 대표적인 예다.
동양은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부채비율이 올해 6월 말 현재 1천533%로 매우 높다. 업종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부채비율이 200%가 넘으면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해석한다.
동양의 금융권 여신은 약 9천억원이다. 이 중 은행권 여신은 산업은행, 농협, 우리은행 등 3곳에서 대출받은 6천억원 정도다.
올해 상반기에 유동성 위기를 맞은 STX그룹의 은행권 여신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농협은행, 외환은행 등에 10조원 이상이었던 것과 비교되는 액수다.
이에 비해 동양시멘트, 동양레저 등 동양 계열사가 발행한 CP와 회사채 규모는 2조3천억원 이상이다.
금융권에서는 동양이 CP와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돈을 끌어다 쓴 이유 가운데 대출을 줄여 은행과 감독당국의 간섭을 피하겠다는 목적도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동양의 선택은 회사가 최악의 어려움을 겪게 되기까지 감독당국이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고,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동원한 정부의 '관치'에도 기대기 어려운 결과를 낳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동양이 주채무계열에 들어갔다면 오히려 위급한 상황에 은행의 도움을 받기는 좀 더 쉬웠을 것"이라며 "시장성차입과 은행 여신을 통한 자금조달 비율을 적절히 유지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양·현대 등 주채무계열 범위 넓어질 듯…채권은행 권한 강화
이런 상황이 또 생기는 것을 막고자 금융당국은 주채무계열 선정 방식을 손볼 계획이다.
주채무계열에 포함되지 않은 기업 중 현대와 동양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컸던 점을 고려하면 이들 기업이 새로운 기준에 따라 주채무계열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금감원은 주채무계열 선정 기준을 현재 '금융권 신용공여액 0.1% 이상'에서 0.1% 이하로 내리는 방안, CP와 회사채 발행액의 50%가량을 신용공여액에 포함하는 방안, 그리고 공정거래법상 규제 대상인 기업집단 가운데 부채비율이 200% 이상인 기업을 포함하는 방안 등을 금융위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이 안과 함께 대기업의 부실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추가 장치를 고심 중이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주채권은행 역할을 많이 하는 금융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시장이 납득할만한 기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채무계열 가운데 재무구조 개선약정 대상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주채무계열의 영업이익률, 유동성과 현금 흐름 등 재무 상황만 평가했지만 앞으로는 업황 같은 비재무적 요소까지 평가해 재무구조를 개선할 업체를 골라낼 전망이기 때문이다.
올해 재무구조 개선약정 체결 대상은 한진, 동부, STX, 금호아시아나, 대한전선, 성동조선 등 6곳이었다.
주채권은행의 권한도 지금보다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권은 올해 상반기부터 금감원과 주채권은행 업무 가이드라인 마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가이드라인 개선 작업을 해왔다.
은행업감독업무 시행세칙은 주채무계열이나 소속 기업의 경영이 악화한 경우 주채권은행이 기업 현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기업에 대한 정보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채권은행들은 우선 계열사 간 거래나 인수·합병(M&A) 등 사업확장 계획, 지배구조 관련 변동사항 등의 정보를 공동으로 요청해 주채권은행에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