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송 : FM 98. 1 (18:00~20:00)
■ 방송일 : 2013년 9월 25일 (수)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구로다 (산케이 서울지국장)
◇ 정관용> 뉴라이트 계열의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 큰 이슈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주요 신문 가운데 처음으로 이 산케이신문이 칼럼을 통해서 교학사의 역사교과서를 칭찬하고 나섰네요. 이 칼럼을 쓴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서울지국장 연결해서 이야기 듣겠습니다. 산케이신문의 서울지국장 구로다 지국장, 안녕하세요?
◆ 구로다> 네,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칼럼 언제 쓰셨어요?
◆ 구로다> 제가... 토요일이네요, 지난 토요일에.
◇ 정관용> 주된 내용이 어떤 겁니까?
◆ 구로다> 우리도 역시 교과서 문제가 한-일 간에 있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교과서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옛날에 후소사 교과서다 해서 한-일 간에 갈등이 심했었는데 그것도 일본에 있어서는 좌우의 대결이에요. 보수와 진보의 교과서 대립이었는데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좌우가 대립해서 교과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그건 일본과 마찬가지다. 몇 년 후에 또 같은 현상이 일어났구나. 그렇게 재미있게 썼죠. 그런 식으로.
◇ 정관용> 그러니까 일본에서도 좌우파가 이념논쟁에 기반한 사관으로 대립을 하는 역사교과서 논쟁이 있다?
◆ 구로다> 그렇죠. 그게 바로 후소사 교과서 문제였죠. 일본에 있어서는.
◇ 정관용> 그럼 후소사 교과서가 우파의 교과서로 나왔던 거죠?
◆ 구로다> 그렇죠.
◇ 정관용> 그런데 한국의 교학사 교과서가 바로 그런 후소사 교과서 같은 우파 교과서로 나왔다?
◆ 구로다> 그러네요.
◇ 정관용> 그 우파라고 하는 것의 핵심 내용은 뭡니까?
◆ 구로다> 한국에 있어서 특히 좌파 측에서 여러 가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비판, 비난이 많이 나와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벌써 나타났기 때문에 제가 자세히 말할 수밖에 없는데 일단 여기에 있어서는 소위 일제시대에 있어서의 평가라고 할까요? 역사관. 그리고 해방 후의 정치 상황에 대한 평가. 그런 면에서 기존에서의 진보진영의 사관과 조금 다르다 그런 거죠. 한국에 있어서. 그런 점에서 대립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요. 일본에 좀 관심이 있다는 게 그 대립이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동안에 한국의 그 교과서에 있어서는 일단 역사교과서는 국정교과서 하나밖에 없었잖아요.
◇ 정관용> 과거에 그랬고 지금은 바뀌어 있죠.
◆ 구로다> 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바뀌었잖아요. 그것은 일본에서 알려진 게 아니에요. 그것이. 그러니까 이번에 이런 한국에서 교과서 문제가 일어났다고 하니까. 한국에 있어서도 다양하게 여러 가지 교과서가 나오게 됐구나. 그래도 검정제도잖아요. 그것도 일본과 마찬가지다. 복수교과서 자유채택이 됐다. 그러니까 일본과 똑같은 민주주의 국가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교과서 제도가 됐구나. 난 그런 관점이에요.
◇ 정관용> 그런 것을 소개했다?
◆ 구로다> 그렇죠.
◇ 정관용> 지금 계속해서 언급을 주로 해방 이후 현대사 파트 부분에 있어서 조금 시각을 대립하는 것, 이런 것 등등을 지금 지적하셨는데. 사실 일제시대로 돌아가서 우리 구로다 지국장은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받아들였다. 이 점을 쓰지 않으셨어요?
◆ 구로다> 그런 면도 있다고 그렇게 썼는데. 실제로 제가 교학사 교과서를 다 봤어요. 다 봤는데 어떤 말로 하면 제가 너무 기대한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그 내용을 보면 소위 비판을 받고 있는 것처럼 친일 같은 거는 전혀 아닙니다.
◇ 정관용> 그래요?
◆ 구로다> 그래서 오히려 그동안의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하나의 민족사관이라고 할까요? 강한 민족주의가 나타나 있는 그런 기술이에요. 우리가 볼 때. 다만 일제시대에 대해서는 약간의 다양한 면. 그러니까 억압과 수탈의 그런 시대였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런 발전은 있었다.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한국 사람들의 자기개발이라고 할까요? 자기들이 그런 어려운 속에서도 많이 노력했다, 그런 괜찮은 면. 그것이 결과적으로 사회발전, 경제발전 됐다는 거잖아요. 다양한 면이 나와 있다, 그 정도로 봤어요. 저는.
◇ 정관용> 그러니까 구로다 지국장은 식민지배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라고 써주기를 기대하셨는데.
◆ 구로다> 아니, 더 많이 나와 있는 게 아닌가 했는데 제가 기대한 만큼 많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그 시대를 다각적으로 보는 시각이 나와 있어요.
◇ 정관용> 그런데 그 식민지 근대화론. 이거는 사실 일본 역사학계에서도 논란의 대상 아니에요?
◆ 구로다> 그렇지도 않죠. 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인데, 식민지 시스템 자체를 이제 와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없어요. 과거의 어떤 시대 상황에서 그런 게 있었다는 건데. 다만 그런 속에서도 개발, 발전 여러 가지 그런 면도 있었던 건 사실이기 때문에 그걸 다각적으로 소개한다 그거는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봐요. 저는. 특히 교학사 교과서를 보면 이런 것이 아주 재미있게 나왔더라고요. 인구증가에 관한 통계가 나와 있는데. 일제시대에 인구가 거의 50%가 늘었다는 거죠. 한반도에 있어서. 그것이 뭘 뜻하느냐 하면 자세히는 안 나왔지만 억압받고 수탈받고 가난했더라면 그런 인구증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거잖아요.
◇ 정관용> 그런데 이건 또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많은 게 일제시대 이전에는 인구통계 자체가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도 많지 않습니까?
◆ 구로다> 여러 가지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저는 객관적인 사실만 봅니다, 저는.
◇ 정관용> 하여튼 알겠습니다. 우리 구로다 지국장께서는 대표적인 일본의 우파언론인이시기 때문에 식민지 근대화론을 교학사 교과서가 좀 제대로 써줬으면 하고 봤는데 실망했다, 이 말씀까지는 들었는데.
◆ 구로다> 네. (웃음) 조금 부족했다.
◇ 정관용> 그런데 어쨌든 그래도 지금 국내에서 교학사 교과서가 굉장히 논란이 되고 있는 상태에서 산케이신문이 그 교학사 교과서를 칭찬하는 칼럼을 실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우리 국내의 여론에서는 안 좋게 작용할 거라고 하는 예상은 안 하셨나요?
◆ 구로다> 칭찬은 아니고요. 있는 그대로 특히 한국 언론에 나타나 있는 좌우의 대결문제, 비판, 비난, 해명 그거를 소개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칭찬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에 대해서 역사관의 차이에서 있어서 이런 논쟁이 있다, 그거는 바람직한 일이다. 왜냐하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 정관용> 잠깐만요. 제가 내용을 보면 일본의 후소사 교과서 나와서 논란이 될 때 한국에서 후소사 교과서를 비판했지 않았습니까?
◆ 구로다> 그렇죠.
◇ 정관용> 그런데 지금 칼럼에서 당신네도 교학사 교과서 같은 거 나왔는데 후소사 교과서 비판한 거 한국이 반성해라. 이렇게 쓰셨잖아요.
◆ 구로다> 쉽게 말하면 그런 이야기인데. 왜냐하면 대한민국도 이만큼 자유민주주의 나라가 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교과서에 있어서도 다양한 교과서가 나오기 마련이다.
◇ 정관용> 거기까지는 아까 말씀하셨고.
◆ 구로다> 그리고요.
◇ 정관용> 제가 여쭤본 핵심은 후소사 교과서를 비판한 한국을 향해서 반성해라라고 촉구하는 칼럼이 결과적으로는 교학사 교과서 때문이지 않습니까?
◆ 구로다> 네.
◇ 정관용> 그렇게 되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국내, 한국 내의 여론이 더 악화될 거라고 하는 예상은 안하셨어요?
◆ 구로다> 글쎄요. 그건 한국 국민들이랑 여론이 판단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동안에 한국 측에서 일본의 후소사 교과서에 대해서 과도한 비난, 비판이 있었다고 봅니다, 저는. 그런데 그것도 어디까지나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거는 일본 국민들이에요. 그러니까 다양한 역사관, 다양한 교과서는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 맡기자, 그 나라에 판단에 맡기자. 개입하지 말라는 거죠.
◇ 정관용> 하긴 구로다 지국장이 한국 독자를 생각하고 칼럼 쓰신 건 아닐 테니까. 일본 독자한테 쓰신 칼럼인 거고요.
◆ 구로다> 그렇습니다.
◇ 정관용>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 구로다> 오케이, 고맙습니다.
◇ 정관용> 고맙습니다.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서울지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봤고요.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미 이 칼럼이 일단 나오니까 교학사 교과서 지지했던 사람들 이 산케이신문의 칼럼을 보고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 이런 이야기들이 이미 나오고 있는 상황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