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방송에서 이씨는 자신의 인생사에 대해 언급했다. 이씨는 "해방 후 궁에서 쫓겨난 뒤 구 황실 사무총국에서 국가 생계비를 받아 생계를 이어나갔지만 1960년대 혁명이 일어나면서 화재가 발생해 역사 자료가 사라져 생계비 지원이 끊겼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때 형님께서 피를 토하고 돌아가셨다. 결국 극심한 슬픔과 함께 '더이상 여기서는 못살겠다'는 생각에 미국행을 결심했다. 그때가 1979년 12월 9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씨는 "미국에서 직업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3개월이 지나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다. 결국 직업을 가져야 했기에 수영장 청소를 했다.
또 높은 빌딩에 가서 쓰레기통 청소도 했으며 밤에는 권총 차고 나가서 경비원으로도 일했다"며 그간 겪은 생활고에 대해 말했다.
또 이씨는 이 같은 생활고로 모두 9번의 자살시도를 했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26살 때부터 자살시도를 9번이나 했다. 동생 4명 데리고 죽으려고 했다. 약을 사서 술에 타 마시기도 했다. 도봉산 바위에 올라가서 떨어졌는데 눈 떠보면 나뭇가지에 걸려있더라. 죽을 때가 아니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의 열한번째 자식으로 대한제국 황실의 후예다. 의친왕은 모두 13남 9녀의 자손이 있었으며 그중 현재 생존한 사람은 4남 5녀로 이씨는 제외한 나머지 황손들은 모두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씨는 1962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비둘기 집' 등의 곡을 불렀다. 이후 1996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차량전복사고로 크게 부상을 당하고 귀국했다.
2000년에는 총선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포기했고 2004년 10월에 전북 전주 한옥마을 승광재에 입주한 뒤 2005년부터 전주대 사학과에 객원교수로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