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된 지 20년도 넘은 이 오래된 아파트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여느 아파트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지만, 후문으로 들어서면 마치 꽃 박람회에 온 것과도 같은 형형색색의 다양한 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래 이곳은 아파트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잔디와 잡풀만 무성했던 곳.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후미진 곳이라 사람들도 잘 찾지 않는 곳이었다.
이곳이 꽃밭으로 바뀐 건 6년 전 아파트 주민인 김상춘(78), 김정자(70) 할머니가 반 평도 안 되는 공간에 꽃을 심기 시작하면서부터.
평소 꽃을 좋아했던 두 할머니는 흙과 잡풀로만 되어 있는 아파트 정원이 삭막하다 생각돼 꽃을 심기 시작했다.
"우리가 원래 꽃을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얻은 꽃씨를 하나둘씩 소중히 모았다가 심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조금씩 확장돼 이렇게까지 커졌지요."
꽃을 심고 가꿔본 사람은 알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두 할머니는 꽃을 돌보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땅도 갈고, 매일 물도 주는 등 두 할머니는 볕이 강한 한낮을 제외하고는 거의 화단에서 꽃과 함께 지냈다.
백일홍, 천일홍, 쪽두리꽃, 맨드라미, 가을 국화, 봉숭아, 샐비어, 해바라기 등 심은 꽃의 종류도 다양해 두 할머니도 기억을 잘 못할 정도였다.
이처럼 보기에 마냥 예쁜 꽃이지만 초기에는 꽃 심기를 반대하는 주민도 일부 있었다.
'꽃가루가 날린다', '꽃 때문에 온 벌이 집까지 들어 온다', '꽃밭에 뿌리는 물 때문에 관리비가 많이 나간다' 등이 반대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반대하던 일부 주민도 두 할머니의 꽃 가꾸기를 응원한다.
이제 꽃밭은 아파트의 명물이 됐다. 꽃밭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주변 아파트 사람들이 구경 와 두 할머니에게 꽃씨를 얻어가고, 심고 가꾸는 법을 배워갔다.
근처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학습을 오기도 했다.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색의 꽃 주변에서 뛰어놀았다.
이제 꽃밭은 주민들이 제일 즐겨 찾는 산책로가 됐다. 거동이 불편한 어른부터 아이까지 꽃밭을 거닌다. 저녁만 되면 꽃밭에 사람들이 몰린다.
아파트 주민인 주부 신강여 씨는 "우리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인데, 매일 저녁 친구들과 이 꽃밭에서만 논다"며 "꽃밭을 만드느라 수고하신 할머니들께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꽃을 심고 나서 가장 좋은 것은 이웃들이 서로 인사를 한다는 거예요. 아파트라는 데가 원래 삭막하잖아요. 옆집끼리 서로 모르고, 윗집 아랫집이 서로 모르고.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도 인사조차 안 했었어요. 그런데 꽃밭에서도 만나고 그러니 안면도 생겨서 그런지, 이제는 서로 웃으며 인사를 해요."
두 할머니는 자신들의 작은 행동으로 이런 변화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 둘이 좋아서 시작한 건데 아파트 주민들이 좋아하니까 보람도 있네요. 꽃밭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사실 두 할머니에겐 지금 만든 화단만 잘 가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두 할머니가 사는 동 주변만 꽃밭으로 만들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아파트를 온통 꽃밭으로 가꾸고 싶은 게 두 할머니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