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거나 전 사원이 금연을 실천하는 회사, 여느 기업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여행업계의 이단아, 펀(FUN)경영의 선두주자 신창연 씨가 대표로 있는 여행박사 직원들의 복지혜택들이다.
"일도 인생도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여행박사 신창연 대표. 자잘한 얘기는 다 빼더라도, 일단 아침 회의도 없고, 출근은 점심시간 전에만 오면 된다. 필요하면 재택근무도 가능하다. 출퇴근 거리가 3시간이 넘는 직원은 회사 사옥에 들어갈 수 있다. 복지는 일반 회사 기준으로 상상 초월이다. 깨알 같은 직원 복지 혜택을 세어보니 무려 35가지나 된다.
"직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근무시간도 자율적이어서 직원 스스로가 낮 12시 이전까지 원하는 시간대에 출근해 8시간을 일하고 퇴근하면 됩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길 원하면 자전거를 사주고, 직원 3명이상 카풀을 한다고 하면 회사 차량을 쓰라고 내줍니다. 골프 입문 1년 내에 100타(여자 120타)를 깨면 1000만원을 보너스로 준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이 성형수술을 원하면 수술비도 지원해 줍니다."
신 대표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눈귀가 번쩍 놀란다. "과연 회사가 망하지 않고 잘 돌아 가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미 한번 망해봐서 더 열심히 재미있게 일한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도대체 이 양반이 정신이 있는 건가"하는 찰나에 책상 앞에 놓여있던 과일을 쓱쓱 닦더니 껍질채 내민다. 이 역시 "회사에서도 과일을 먹고 싶다는 직원들의 요청"으로 얼마전 만들어진 복지 옵션이란다. 자유분방한 신 대표의 성격이 그대로 보이는 듯 했다. 면바지에 티셔츠를 차려입은 캐주얼한 복장에 인터뷰 내내 편하게 기자를 대하는 것도 그랬다.
신 대표의 기인 같은 행동은 사원 복지제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행을 다녀온 뒤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에게 "그럼 당신이 들어와서 일을 한번 해보세요"라며 일자리를 제공한 적도 많다. 홋카이도 팀장과 규슈 팀장 모두 불만을 제기하려 왔다 직원으로 채용된 케이스다. 인센티브도 많이 준다. 매출 3억 원을 달성하면 3000만 원의 인센티브를 준다. 인센티브로 1억 원을 받아간 직원도 있다.
여행박사는 2008년 파산의 위기를 격은 적도 있지만 3개월만에 훌훌털고 현재는 직원 250여 명, 연매출 1300억 원에 영업이익만 130억 원, 해외여행 송출 34만 명을 헤아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장 냄새는 어디에서도 풍기지 않는 신 대표에게서 여느 기업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회사가 승승장구할 수 있는 비결을 들어봤다.
-특별한 경영철학이 있다고 들었다.
"소사장제를 도입해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율권을 부여함으로써 신바람 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고객들에게는 국내 여행경비 정도로 부담 없이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돕는 것이다. '1박3일 올빼미 일본여행' 같은 싸고 획기적인 상품이 히트 친 이유다. 그리고 이익이 나면 직원들에게 나중에 잘해주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 성과를 나누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08년 파산이후 어렵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위기라고 생각하면 위기지만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당시 직원들이 십시일반 자본금을 모아 새출발을 할 수 있었다. 모두 연봉 1원을 결의하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여행업 자체는 잘 되고 있었는데, 위에서 돈 관리를 잘 못해서 그랬기 때문에 재기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6개월 만에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사원들의 복지에 집착하는 것도 그때 얻은 교훈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언뜻 보면 좀 지나친 것 같은 옵션이나 보너스가 실은 직원들을 회사의 주인으로 거듭나게 했다."
-급여 책정도 일반 기업과 다르다고 들었다.
"우리 회사를 흔히들 택시회사라고 부른다. 팀마다 일정 금액을 회사에 사납금과 같이 세금으로 낸다. 나머지는 모두 팀원들 몫이다. 결과적으로 여행박사는 수익 중에서 유보자금으로 15억 원만 회사에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직원에게 준다.
-회계시스템은 물론 직원들에게 법인카드 내역까지 공개한다고 들었다.
"누구든지 사내 인트라넷으로 접속해 회사의 재무 상황 등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 대표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도 구체적으로 공개한다. 어디서 얼마를 내고 골프를 쳤는지도 볼 수 있다. 인트라넷에 대표 일정도 공개한다.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개인 돈을 써야 한다. 얼만 전부터는 직원 모두가 법인카드를 들고 다닌다."
-팀장을 투표로 뽑는 등 특별한 인사제도가 있다고 들었다.
"창업하고 직원들이 좀 늘어났을 때 일이다. 학력이 낮거나 여성인 직원을 팀장에 앉혔더니 직원들로부터 "저 사람은 팀장인데, 왜 나는 팀장이 안 되느냐"는 불만이 나오더라. 그래서 "너희가 일할 사람, 너희가 투표로 뽑아라"고 했다. 지난해 말 38명이 팀장급 이상에 입후보했다. 이 중 12명이 낙선했다. 이 중에는 처음 입후보한 직원도 있고, 재선을 노리다 떨어진 사람도 있다. 재선에 실패하면 팀장은 다시 팀원으로 돌아간다. 모든 권한이 박탈되고, 월급도 팀원급으로 줄어든다. 사장이 팀장을 임명하는 회사에서는 팀장이 못 되면 그만둬야 한다. 그러나 여행박사는 다르다. 그만두지 않는다. 이듬해나 그 이듬해에 다시 팀장이 되는 게 대부분이다. 자기가 떨어진 이유를 알고 고치기 때문이다."
-회사 면접이 특이하다 들었다.
"흡연자는 뽑지 않는다는 원칙 외에 정해진 방식은 없다. 팀에서 알아서 한다. 회의실에서 면접을 보기도 하고, 볼링장이나 술집에서 하기도 한다."
-회사 입사지원서가 특이하다고 들었다.
"그렇다. 학력란이 없다. 출신지도 못 쓴다. 대신 지원자의 사진으로 입사지원서의 3분의 1을 채워야 한다.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자신을 가장 개성 있게 표현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게 양복 입는 것이다."
-투표했다고 보너스를 지급하나.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때였다. 오후 5시까지 투표하지 않은 직원들이 있기에 직원들이 100% 투표하면 1인당 5만 원씩 주겠다고 했다. 전원 투표에 성공했다. 작년 국회의원 선거 때는 전 직원 투표 시 1인당 30만 원, 지난 대선 때는 1인당 50만 원씩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국회의원 선거 때까지는 대표 개인 돈으로 지급했지만, 대선 때는 액수가 커서 회사 돈으로 지급했다. 직원들이 서로에게 투표를 독려한다."
-그럼, 한 명이라도 투표를 안 하면 정말 보너스를 안 주는가.
"그렇다. 여행박사에는 연좌제(한 사람의 잘못에 대해 특정 범위의 사람이 연대책임을 지는 제도)가 많다. 금연이 대표적인 예다. 직원이 한 명이라도 담배를 피우면 그 직원이 속한 본부는 해외 워크숍에서 제외한다. 지난해에는 전 직원이 금연하면 모두에게 보험과 적금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검사 결과 2명이 흡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은 들었지만 적금은 취소했다. 3개월 후에 다시 검사해서 한 명이라도 흡연자가 나오면 적금에 넣으려 했던 돈은 불우이웃 돕는데 사용했다."
-연좌제를 실시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왕 시작한 이상 제대로 하자는 뜻이다. 1대1로 금연을 설득하니까 흡연자가 계속 나왔다. 그래서 연좌제를 도입했다. 사내 동호회 지원도 그렇게 한다. 회원 중 소수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지원을 취소한다. 한겨울에 등산할 때도 그렇게 했다. 학비 지원도 똑같다. 반드시 졸업을 해야 한다. 졸업하지 못하면 이미 지원한 학비는 월급에서 공제한다."
-끝으로 신 대표가 생각하는 기업의 복지란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은 세금을 못 내도 나라에서 복지 혜택을 준다. 여행박사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의 실적과 상관없이 기본적인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여행사다보니 해외여행은 1년에 서너 번은 기본이다. 한국의 여느 기업 문화와 저희 문화를 비교하면 이상해 보일 것이다. 애꾸눈 나라에는 애꾸눈이 정상이고, 두 눈이 있으면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한국의 수 많은 경영 관행 중에 비정상적인 게 많다. 여행박사는 앞으로도 복지혜택을 더 늘릴 계획이다."
<신창연 대표는>
경북 문경 산동네 출신인 신 대표는 열다섯 살 아직 세상을 배우기엔 이른 나이에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그후 스티로폼 공장부터 포장마차, 주간지 판매 등 50여 가지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었다. 중간 틈틈이 공부해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군 전역 후 늦깎이 대학생으로 경원대학교 관광호텔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일본으로 무전여행을 가서 막노동을 하면서도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관광 인프라에 큰 감명을 받아 돌아와 대학 졸업 후 여행사에 취직했다. 십 년 동안 마음껏 일하다가 2000년 평생 즐겁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회사, 여행박사를 설립했다.
자본금은 단돈 250만 원과 열정. 남의 사무실 한구석에 책상을 들이고 직원 세 명과 함께 시작했지만 '불이 꺼지지 않는 회사'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일에 미쳐 살았다. 일에 빠져, 사람에 빠져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보냈다.
좀 지나칠 정도로 직원들과 성과를 나눴다. 그러다가 2008년 큰 위기가 닥쳐왔다. 당시 여행업계에 주식시장 상장 바람이 불었다. 직상장이 여의치 않아 인수합병 제안에 응했다가 6개월 만에 모 회사가 부도나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떠날 사람 떠나고, 남은 직원들이 십시일반 자본금을 모아 재창업에 도전했다.
그 덕에 3개월 만에 다시 회생한 여행박사는 서울 용산구와 부산 중구에 자체 건물을 보유할 정도로 매년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사원들의 복지에 집착하는 것도 그때 얻은 교훈이다. 좀 지나친 것 같은 옵션이나 보너스가 실은 직원들을 회사의 주인으로 거듭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