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기차만 타면 집에 가는데"…실향민들의 서글픈 추석

눈 앞에 고향 두고 애타는 실향민 "단 한 번만 밟아보고 죽었으면"

북녘땅을 바라보며 하모니카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는 실향민 김춘삼(82) 할아버지.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이지만 가고 싶어도 고향 땅을 밟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북녘에 가족과 정든 땅을 두고 온 실향민들은 고향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임진각에서 이산의 아픔을 달래볼 뿐이다.

민족대명절인 추석, 신옥순(85) 할머니는 경기도 파주 임진각을 찾았다. 남편과 막내 아들에게 의지해 통일전망대 계단을 힘겹게 올라온 신 할머니는 손에 잡힐 듯한 북녘 땅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황해도 평산이 고향인 신 할머니는 일제시대 때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 17세 어린나이에 얼굴도 모르던 남편과 약혼을 했다. 이듬해 해방과 동시에 남편과 결혼식을 올린 신 할머니는 남편이 살던 서울로 내려와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아무런 예고없이 6·25전쟁이 터졌고, 신 할머니는 두 번 다시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없게 됐다.

"이렇게 가까운데 왜 못 간다는 거냐". 전망대에서 노랗게 익은 북녘 들판을 보며 신 할머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오열했다.

"저 기차만 타면 우리 집에 가는데, 저 기차는 우리 집 앞으로 가는데…". 신 할머니는 경의선 철길을 바라보며 들어주는 이 없는 넋두리만 읊었다.

82살 김춘삼 할아버지도 이른 아침부터 임진각을 찾았다. 김 할아버지는 먼저 망배단에서 고향인 황해도 재령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19살 때 인민군 학도병으로 끌려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다 자유송환 때 남쪽을 택했다는 김 할아버지. "휴전하더라도 100일 안에 고향에 다시 갈 수 있다"는 얘기에 큰 고민없이 택한 선택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되고 말았다.

"가긴 어디를 가. 그게 여태까지 이렇게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향으로 가버렸지. 기가 막힌 거다. 그래도 10년 안에는 가겠지 했는데 63년이 됐다"며 김 할아버지는 가슴을 쳤다.

꿈에도 그리운 고향집 모습은 60여 년 세월에도 선명하기만 하다.

"지금도 집에 찾아갈 것 같다"는 김 할아버지는 "우리 집 울타리가 다 과일나무였는데, 자두도 따먹고 복숭아도 따먹던 생각이 나고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오솔길, 느티나무, 텃밭 모두 기억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끝까지 모시지 못한 마음도 죄스럽기만 하다.

김 할아버지는 "부모님께 쌀밥 한 그릇이라도 해드리고 싶고 지금 안 계시더라도 산소에라도 가보고 싶다"며 "눈 감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단 한 번만이라도 고향 땅을 밟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임진각에라도 다녀오면 고향에 갔다온 것처럼 기분이 한결 편안하다는 김 할아버지.

한 소절 노래라도 고향 땅에 닿길 기대하며 통일전망대에서 하모니카로 '고향의 봄'을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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