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엄마'가 대세로 등극했다. 푸근하고 인자한 어머니대신 욕망에 사로잡힌 엄마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자식을 위해 다른 이들을 괴롭히면서도 양심의 가책 따윈 없다. 남편의 자식들은 물론, 한 배로 낳은 자식도 눈물 나도록 차별한다.
◈ "1000원짜리 빤쓰 하나 안 사주는 딸, 필요없어"-'왕가네 식구들'
KBS 2TV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극본 문영남, 연출 진형욱)의 이앙금(김해숙)은 5남매 중 첫째 왕수박(오현경)만 편애하는 엄마다. 수박에게는 언제나 다정한 엄마지만 둘째 왕호박(이태란)에겐 구박을 일삼는다. 주변 사람들도 "호박이는 주워 왔느냐"고 물을 정도다.
수박의 남편이 사업을 망해 거리로 나앉을 위기에 처하자 호박이 10년 넘게 모아온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수박이 새로 이사한 집 화장실 청소도 "잠 좀 안자고 와서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할 정도다.
앙금의 비뚤어진 사랑에 남편 왕봉(장용)도 언성을 높이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앙금과 호박과의 갈등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 "아들을 위해, 뭐든 하겠어"-'황금의 제국'
악녀 끝판왕으로 등극한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극본 박경수, 연출 조남국) 속 한정희(김미숙)도 빼 놓을 수 없는 나쁜 엄마다.
극 중반부까지 최동성(박근형) 회장의 부인으로 인자하고 자상한 미소를 지었던 한정희는 최동성이 숨을 거둘 때에야 본성을 드러냈다. 최동성 때문에 숨을 거둔 전남편을 대신해 복수하기 위해 그동안 발톱을 숨겨 왔던 것.
한정희는 아들 최성재(이현진)를 그룹 총수로 만들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벌이고 있다. 최성재는 어머니의 복수극에 제동을 걸고자 스스로 감옥행을 택했지만 한정희의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아들의 갑작스런 구속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한정희는 치매진단을 받았지만, 최민재(손현주)와 장태주(고수)를 오가며 덫을 놓으려 했다. 단 2회만을 남겨 놓은 상황이지만 한정희가 '황금의 제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전요소로 꼽히는 이유다.
◈ 이제는 회개했지만…'금나와라 뚝딱'
지금은 회계하고 용서를 빌었지만, MBC 주말드라마 '금나와라 뚝딱'(극본 하청옥, 연출 이형선)에서도 나쁜 엄마는 등장했다.
'금나와라 뚝딱'의 장덕희(이혜숙)은 박순상(한진희) 사장의 두 번째 부인이다. 아들 박현준(이태성)이 전처소생인 큰아들 박현수(연정훈)을 제치고 회사를 물려받는 것이 소원인 인물이다. 박현준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까칠하고, 이간질도 서슴치 않는다.
그동안의 거짓말과 악행이 모두 공개되면서 장덕희는 코너에 몰렸다. 그럼에도 잘못을 깨닫지 못했던 장덕희는 아들이 회사를 물려받을 수 있도록 박현수와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를 막으려던 박현준만 사고를 당해 정신을 잃었고, 그때서야 잘못을 깨닫게 됐다. 이에 자신이 쫓아냈던 현수의 친모 진숙(이경진)에게도 눈물로 사죄했다.
◈ 달라진 엄마들, 어떻게 대세가 됐나
비뚤어진 모성이 브라운관에 전면으로 나오게 된 이유는 달라진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이전과 달리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가정 내에서도 어머니들의 입지가 커졌다. 또한 최근 사회 문제로 지적되는 캥거루세대, 연어족 등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극성 모성애가 드라마 속에서 표현된다는 것.
칼럼니스트 하재근 씨는 "가족극에서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극적인 인물이 필요한데, 이런 캐릭터를 어머니가 맡게 되는 것"이라며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극성이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요즘 드라마에선 어머니에 대한 설정이 과도하게 자극적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며 "드라마의 질은 물론 현실성도 떨어진다. 자극적인 요소로 손쉽게 시청률을 올리려는 시도인 만큼, 다른 방법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것 "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