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5대 권력기관장 내 사람으로 채운다

임기제 무시한 권력기관장 교체, 권력의 시녀로 전락 우려

'혼외아들' 의혹에 시달리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13일 자진사퇴하면서 검찰과 경찰,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 등 이른바 5대 권력기관장을 모두 박근혜 대통령 사람으로 채울 발판이 마련됐다.

정권이 바뀐만큼 새 정부의 국정철학에 맡는 인물이 권력기관장에 임명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과 동시에 헌법과 법률에 임기가 정해진 이들 기관의 장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수시로 바뀌면서 권력기관 독립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눈엣가시 채 총장, 결국 낙마

이날 채 총장이 임명 5개월여 만에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그는 지난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시작된 이래 12번째로 2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검찰총장으로 기록됐다.

그의 사퇴 과정에서 법무부장관이 나서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계획을 밝히는 등 사상 초유의 방식이 동원된 것은 사실상 정권 차원에서 사퇴를 압박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조선일보에 보도된 혼외아들 의혹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채 총장이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과정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충돌을 빚는 등 현정권에 눈엣가싯거리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채 총장이 현 정부들어 임명되기는 했지만 이명박 정부 말기 검찰총장 추천위원회를 통해 임명과정이 진행되면서 "현 정부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여권에서는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검찰총장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3명의 후보 가운데 우여곡절 끝에 채 총장이 임명되기는 했지만 3명 모두 현 정부가 원하는 후보가 아니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는 실정이다.


이에따라 채 총장 후임을 추천하기 위해 열리는 검찰총장 추천위원회에서는 현 정부의 입맛에 맞는 후보들이 추천되고 그 가운데 한명을 박근혜 대통령이 낙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후임 검찰총장은 채 총장의 중도 낙마과정을 지켜본 만큼 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릴 수 밖에 없고 그만큼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도 약화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 임기 못채운 권력기관장만 벌써 3명

검찰총장 뿐만 아니라 행정부를 감시하는 권한을 가진 양건 감사원장은 헌법상 보장된 임기에도 불구하고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양 원장의 사퇴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양 원장이 현 정권과 갈등끝에 사퇴하면서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와 함께 경찰청장 역시 임기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전임 김기용 경찰청장은 임기를 14개월 남기고 교체됐다.

김 전 청장은 임기가 보장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당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내정자의 성접대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마찰을 빚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격적으로 경질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경찰청장 임기제를 약속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았고 김 전 청장의 교체 이유가 된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5대 권력기관장 가운데 3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 낙마하면서 이들 기관장을 모두 박근혜 대통령 사람으로 채울 수 있게 됐다.

◈ 새 술은 새부대에 vs 권력의 시녀 전락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속담처럼 정권이 바뀐 만큼 새 정부의 국정철학에 맞는 인물을 권력기관장에 임명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임기제가 지켜지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그러나 새 정권이 들어서면 전 정권에 임명된 인사들은 자신이 현 정권의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자진해서 물러나는 것이 도리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권력기관장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시시때때로 교체되면 이들 권력기관장들이 국민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충성하는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특히, 그동안 이들 권력기관들은 매 정권마다 더 큰 권력에 휘둘린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기관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다.

국정원 댓글녀 사건으로 촉발된 이번 사건은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을 거치며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려 했다는 정황들이 속속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대북정보수집과 국가안보업무에 주력해야 할 국정원이 본분을 망각한 채 권력의 시녀가 돼 국내 정치에 개입한 것으로 심각한 국기문란 사건이다.

이와 함께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 역시 권력기관이 권력의 입맛에 맞는 감사결과를 내놓을 때 얼마나 심각한 재앙을 빚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 당시 22조원이라는 막대한 혈세가 들어가는 4대강 사업 감사에서는 아무 문제 없다는 결론을 내놨다가 정권이 바뀌자 마자 결국 4대강 사업은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감사결과를 내놨다.

감사원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대로된 감사결과를 내놓았다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혈세를 아낄 수 있었지만 그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원칙과 신뢰'를 강조해 온 박근혜 정부 역시 이전 정권에서 반복됐던 권력기관장 교체 카드를 빼들었다는 점에서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이들 권력기관이 전 정권에서의 전철을 밟을 위험성이 더 커졌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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