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MLB 레터]켄 거닉 "신인왕? 푸이그보다 류현진!"

'거닉 기자님, 잘 지켜봐주세요' LA 다저스 류현진은 시즌 전 현지 언론에서 불거진 체력과 흡연 문제를 불식시키는 신인답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12일(한국 시각) 애리조나전 경기 모습.(LA=임종률 기자)
켄 거닉( Ken Gurnick). 메이저리그 팬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셨을 법한 이름입니다. 특히 올해 류현진(26)이 LA 다저스에서 활약하게 되면서 한국에서도 꽤 친숙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거닉은 메이저리그 홈페이지(MLB.COM)의 다저스 전담 베테랑 기자입니다. 올해 류현진은 물론 소속팀 다저스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국내 팬들에게 현지 소식을 전해주는 메신저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거닉 기자는 지난 2월 시즌 전 스프링캠프 때 류현진에 대한 비판 기사로 국내 팬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류현진의 다소 저조한 달리기 실력에 대해 "담배를 끊어야 할 것 같다"고 꼬집었던 겁니다. 이후 류현진의 실력을 인정했지만 어쨌든 꽤 회자가 됐던 기사입니다.

사실 저도 거닉 기자가 누군지 자못 궁금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 현지의 반응과 인터뷰 등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거닉 기자의 기사를 적잖게 참고하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읽을 때면 자주 고참 기자다운 풍부한 경험과 날카로운 시각이 느껴졌습니다. 과연 거닉 기자는 어떤 사람일까.

▲"한국에서 유명? 비판 기사 때문일 것"

마침내 류현진이 등판한 12일(한국 시각) 애리조나와 경기 전 다저스 더그아웃에서 거닉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상상했던 바와 달리 거닉 기자는 자그마한 키에 마른 체구였습니다. 그러나 다소 왜소한 몸집에서도 사람을 압도하는 듯한 예리한 안광에서 평소의 강단 있는 논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바로 켄 거닉이오!' 12일(한국 시각) 애리조나와 경기 전 더그아웃에서 취재 중인 켄 거닉 기자. 현지 취재진에 따르면 사진을 잘 안 찍는다고 했지만 이날은 의외로 포즈를 취했습니다.(LA=임종률 기자)
한국에서 제법 인지도와 인기가 높다고 하자 거닉 기자는 "스프링캠프 당시 기사 때문에 그럴 것"이라며 희미하게 웃습니다. 그러면서도 "다저스에 한국과 일본 투수들이 있을 때 이미 겪었던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입니다.

거닉 기자는 다저스만 20년 넘게 담당한 베테랑입니다. 90년대 중후반 박찬호나 노모 히데오, 2000년대 이시이 가즈히사, 구로다 히로키 등을 쭉 봐왔다고 합니다. 그들의 조국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일반적이라는 겁니다.

체구는 작지만 날카로운 눈빛과 쿨한 말투 등에서 내뿜는 강렬한 카리스마에 왠지 주눅이 드는 느낌이었습니다.(저의 짧은 영어 탓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곧 거닉 기자는 차분한 말투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안도감을 줬습니다. 스프링캠프 기사도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다른 모습에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다저스를 오래 취재한 만큼 애정 있는 충고였다는 겁니다.

▲"신인답지 않은 자신감, 감정 억제 굿!"


그렇다면 다저스 신인 류현진에 대한 거닉 기자의 솔직한 평가는 어떨까. 거닉 기자의 친절한 말투에 용기를 내 물었습니다.

거닉 기자는 한국 취재진 못지 않게 류현진의 장단점을 지극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류현진의 이른바 멘탈을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베테랑 기자의 눈에도 메이저리그 첫 해임에도 신인답지 않은 두둑한 배짱이 신기해 보이는가 봅니다.

거닉 기자는 "빅리그 강타자들을 상대하면 신인들은 쉽게 두려움을 느끼지만 류현진은 그렇지 않다"면서 "신인들에게는 이게 가장 큰 고비인데 류현진은 잘 넘어갔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류현진은 4월3일 데뷔전인 샌프란시스코와 홈 경기에서 패전을 안았지만 6⅓이닝 동안 안타 10개를 맞으면서도 3실점(1자책), 퀄리티스타트를 찍었습니다. 이후 5경기에서 3연승을 달리며 성공적으로 빅리그에 안착했습니다.

이어 "신인들은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흥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류현진은 다르다"면서 "자신에 대한 확신이 느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류현진은 올해 27번 등판에서 22번 6이닝 이상을 던졌고, 5회 이전에 마운드를 내려간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직구 스피드 높여야 체인지업 효과"

여기에 기술적으로는 류현진의 체인지업을 꼽았습니다. 직구와 거의 같은 폼으로 던지는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빅리그에서도 수준급이라는 겁니다.

다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역설적으로 류현진의 체인지업이 양날의 칼처럼 실(失)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관건은 패스트볼의 구속입니다. 거닉 기자는 "약점이라기보다 류현진은 패스트볼을 잘 던져야 체인지업 구사가 더욱 쉬울 것(easier)"이라고 말합니다. 즉 "시속 92마일(약 148km) 정도를 찍으면 체인지업 등 다른 변화구 위력이 커지지만 89, 90마일 즉 145km 이하로 떨어지면 힘들다"는 겁니다.

때문에 거닉 기자는 "류현진이 지치지 않고 꾸준한 체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관심을 모으는 포스트시즌 3선발에 대해서도 "현재는 4선발 리키 놀라스코의 구위가 류현진보다 좋다"면서 "그러나 지금부터 막판까지 얼마나 좋은 공을 던지느냐가 3선발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신인왕? 나라면 푸이그보다 류현진"

'다저스 신인왕은 누구?' LA 다저스의 9월 공식 매거진 표지를 장식한 류현진(왼쪽)과 야시엘 푸이그. 거닉 기자는 중간에 합류한 푸이그보다는 류현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LA=임종률 기자)
여기서 또 궁금한 한 가지. 과연 다저스 전담 기자가 보는 유력한 내셔널리그(NL) 신인왕은 누구냐는 겁니다.

특히 다저스는 류현진과 함께 야시엘 푸이그라는 돋보이는 2명의 신인이 올 시즌 맹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올 시즌 신인 중 다승 1위(13승)를 달리고 있고, 푸이그는 6월부터 빅리그에 합류해 호쾌한 타격과 과감한 주루, 수비 등으로 다저스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거닉 기자는 "만약 자기가 투표한다면 류현진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푸이그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만큼 대단한 활약을 펼쳤지만 꾸준함에서 떨어진다는 겁니다. 거닉 기자는 "시즌 전체를 놓고 팀 기여도를 봐야 한다"면서 "푸이그는 그런 점에서는 류현진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거닉 기자에게 투표권은 없습니다. MVP와 신인왕은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의 투표로 진행되는데 LA에서는 수많은 취재진 중 단 2명만 투표권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는 투표 인원은 미국 전체에서 32명이었습니다.

또 거닉 기자는 "다른 유력한 후보들이 많기 때문에 류현진의 신인왕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면서 "그러나 다저스에서는 류현진을 뽑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제 눈을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시즌 전 비판 기사를 쓰기도 했지만 시즌 막판까지 류현진을 지켜본 결과 그의 활약과 가치를 인정한 셈입니다.

거닉 기자는 이날 경기 전 류현진이 완투는 몰라도 7이닝 정도는 던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결과는 6이닝 10피안타 1탈삼진 3실점 패배. 기대에는 다소 못 미친 셈입니다. 반면 푸이그는 이날 솔로 홈런으로 팀의 영패를 막았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다저스 신인왕 예상도 달라졌을까. 경기 후 만난 거닉 기자는 "그래도 류현진을 뽑겠다"고 했습니다. "삼진은 1개에 그쳤지만 6이닝 3실점도 괜찮은 성적"이라면서 "1경기로 류현진이 그동안 해온 것을 평가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P.S-이날 거닉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저 역시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류현진이 한국에서 포스트시즌 경험이 있느냐, 성적은 어떻게 되느냐, 한 시즌 평균 소화 이닝 등을 꼼꼼이 물었습니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베테랑의 면모가 묻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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