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카쿠에 얽힌 동북 아시아의 과거사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일본이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 대해 국유화 조치를 취한 지 9월 11일로 1년이 됐다. 두 나라는 이 무렵 바다에서 대치한 채 무력시위를 벌이는 등 신경전을 벌였다.

10일 오전에는 중국 해경선 7척이 센카쿠 열도 영해에 진입했고, 일본 해상보안청도 순시선 7척을 투입해 대응했다. 중국은 인민해방군 소속의 육군과 공군 4만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군사훈련도 벌였다.

훈련명은 ‘사명행동(使命行動) 2013’. 그런가 하면 일본 유신회 측에서는 센카쿠에 등대와 어선 대피소를 만들어 아시아의 공존과 평화를 명분으로 내세우자는 의견도 나오는 모양이다.

센카쿠 열도는 동중국해 남쪽 오키나와와 대만 사이에 자리 잡은 5개의 무인도와 세 개의 암초를 가리킨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약 400㎞, 중국 본토에서는 350㎞, 대만에서는 175㎞ 정도 떨어져 있다.

오래 전 중국 명나라와 옛 대만, 오키나와의 어민들이 고기를 잡거나 약초를 캐느라 잠시 들르면서 존재가 알려진 섬이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중국을 꺾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으면서 대만과 대만에 딸린 섬들을 가져갔다. 이때부터 일본은 댜오위다오라 부르던 이 섬들을 센카쿠열도라고 이름을 바꿔 지배를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배로 끝나자 미국과 일본은 전쟁 후 처리를 위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으며 대만 센카쿠 등 모든 영토에 대한 권리를 일본이 포기하도록 한다. 이 때 센카쿠는 미국이 통치하는 오키나와 관할로 편입된다. 중국은 불만을 표시하며 인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대세에 밀려 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결국 일본은 센카쿠를 1895년부터 50년 간 통치하다 전쟁 종료 후 공백기를 거친다. 그리고 1972년에 오키나와를 미국으로부터 넘겨받으면서 다시 센카쿠를 관리했고 1년 전 본격적인 실효적 지배를 추진 한 것이다.

센카쿠 열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작은 섬들의 군집이다. 문제가 생긴 것은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오키나와를 넘겨받기 직전에 벌어진다. 1968년 유엔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 보고서가 센카쿠바다 밑바닥에 석유 등의 자원이 잔뜩 묻혀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자 중국 일본 대만이 화들짝 놀라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대만이 1970년에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대만이 센카쿠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니 그렇다. 그러자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오키나와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선조들이 오래전부터 드나 든 섬이고 오키나와에 딸린 섬으로 인정해 오지 않았냐는 것이다.

1971년에 중국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대만도 어차피 중국의 일부로 생각하는 중국이다. 샌프란시스코 협정은 본래부터 인정 못한다고 밝혔으니 소용없다는 것이고 청일전쟁으로 빼앗아 갔으면 원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논리이다.

일본은 오키나와가 일본영토가 되는 시점인 1972년에 일본이 지배한 40여년의 역사적 근거와 국제협약을 들어 자신들 영토임을 주장했다. 일본이 대만을 배신하고 중국과 국교수교를 해야 하는 1972년 말 중국과 일본은 이 문제는 일단 거론하지 말고 나중에 하자며 넘어갔다.

센카쿠 분쟁과 독도문제는 같은 듯 다르다. 독도 문제는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가 끝나면서 우리나라가 국권과 영토를 되찾은 것이고, 센카쿠는 전쟁을 통해 점령국가가 계속 바뀌어 온 무인도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점령지의 처리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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