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치 국면의 유일한 출구인 대통령과 야당 대표간 회담이 유보적인 상황에서 정기국회 정상화에 드리운 먹구름이 걷히느냐는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 ‘영수냐 다자냐’ 회담 형식 놓고 한달여 간 공방
지난달 1일부터 장외투쟁에 들어간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이틀 뒤인 3일 박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이에 대통령-여야 대표간 3자회담을 수정 제안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다음날인 6일 여야 원내대표까지 참석하는 5자회담을 역제안했고 김한길 대표는 이를 거부했다.
이어 같은달 26일 박 대통령은 “민생회담과 관련해서는 언제든지 여야 지도부와 만나서 논의할 생각이 있다”며 직접 민생 5자회담을 재차 제안했지만, 김한길 대표는 ‘先양자 後다자’회담으로 응수하면서 회담 형식을 놓고 교착상태가 이어졌다.
◈ 귀국한 대통령, 전격 3자회담 제안
9월 정기국회 파행 속에 지난 4일 러시아․베트남 순방을 떠났던 박 대통령이 11일 귀국하면서 여야의 움직임은 다시 분주해졌다.
새누리당 중진의원들은 11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통령이 야당과 만나 난국을 타개하는 큰 정치를 보여달라”고 요청했고 최경환 원내대표도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정치권과 대통령의 회담이 성사될 수 있게 백방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곧바로 다음날인 12일 오전 7시 여야 원내지도부는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약 두 달만에 조찬을 겸한 회동을 갖고 회담 성사와 정국 정상화를 위한 논의를 벌였다.
그리고 7시간 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방문해 여야 대표와 국회의장단과 만나 순방결과를 설명하고 그 이후 여야 대표와 3자회담을 갖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국익을 위해 정파 등 모든 것을 떠나 회담이 성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 시점은 오는 16일로 예상된다.
◈ 현직 대통령 첫 국회 회담 제안, '민생→국정전반' 의제 확대
박 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눈길은 끈다.
첫째 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기로 한 점이다. 청와대 초청 회동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기로 한 것은 국회를 존중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회의 협조를 구할 일이 많으니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존중하고 정국 교착에 대한 적극적 해결 의지를 보이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현직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야당과 '정국관련 회담'을 하자고 제안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둘째로는 그동안 민주당의 국정원 개혁 논의 요구를 수차례 거부하며 민생에만 한정했던 회담 의제를 국정 전반으로 확대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민주당에서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국회 주도의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며 민생에 국한된 회담을 거부해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회담 의제를 국정 전반으로 열어놓으면서 민주당이 요구해온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회 특위 구성 등이 대승적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 사과 등은 유감 표명으로 대체될 수도 있는 만큼 회담의 핵심 의제는 국정원 개혁이 될 것”이라며 “대통령이 의제를 국정 전반으로 확대했다는 것은 국정원 개혁 특위 구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의미있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보였다.
◈ 민주당, 靑 일방적 통보에 불쾌감, 수용 여부 회답 보류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마뜩지 않다.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청와대 발표가 있은 지 4시간 이상 지나서야 브리핑을 갖고 “청와대의 제안에 대해 정확한 의도와 의제 등을 추가적으로 확인한 뒤 당의 공식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회답을 미뤘다.
민주당의 이같은 반응에는 청와대의 통보 방식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정오쯤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과의 회담 형식과 일시를 통보했다. 이에 전 원내대표는 “최소한의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다면 상황이 꼬일 수도 있다”고 답했다.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청와대의 일방적 발표는 대화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생략한 것으로서 제안의 진정성을 확인하기가 어렵다”면서 “엄중한 현재의 정국을 여야 영수간 진지한 회담을 통해 해결해주길 바라는 국민들의 뜻과도 간극이 있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개혁 등을 통한 민주주의 회복방안이 회담의 주의제가 되어야 함이 자명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청와대 통보 방식에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거부가 아닌 보류 입장을 밝힘에 따라 회담 자체가 불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실상 거부가 아니라 유보”라며 “국정 전반을 논의하자고 했지만 통보 방식 등으로 볼 때 회담 자체도 일방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사전 조율을 통해 국정원 개혁 등 의제를 확실히 하는 과정을 거친 뒤 제안 수용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