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참가자들은 "이 교과서가 일본 극우계열의 후쇼사 역사교과서보다 훨씬 나쁘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교학사 교과서 왜 친일 교과서인가'라는 발제문에서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비하하는 등 식민지 근대화론에 철저히 입각해 서술하고 있고, 수탈의 상징인 철도 건설 등에서는 일본의 우익 교과서인 후쇼사 교과서보다 더 친일적으로 기술했다"고 비판했다.
후쇼사 역사교과서는 황국사관에 근거해 일본의 제국주의를 미화하고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쇼사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담고 있는 공민교과서도 냈다.
도 의원에 따르면 교학사 교과서는 을미사변과 관련해 명성황후를 민비로 지칭했다. 교과서는 당시 한성신보 편집장을 지낸 고바야카와 히데오의 을미사변 회고록을 수록했는데, 정작 회고록에서는 민비가 아닌 민후(閔后, 민황후)로 적혀 있음에도 이를 민비로 고쳐 적었다.
교학사 교과서는 또 정미의병 등 항일의병 활동을 기술하면서 다른 교과서들과 달리 철저히 일본의 입장에서 서술했다. 이 교과서는 "일본은 의병들을 소탕해야 했다. 의병들을 토벌하기 시작했으며 국내에서 의병활동은 위축됐다"는 식이다. 소탕과 토벌은 범죄자나 적을 잡아들이거나 없앤다는 의미다.
반면 다른 교과서들은 "일본은 이른바 '남한 대토벌 작전'을 전개해 의병들은 국외 무장투쟁으로 전환했다", "의병들은 체포되거나 학살당했고 국외로 이동해 항전했다", "일본이 양민을 학살했고 의병 4000여명이 체포·피살됐으며, 남은 의병들은 만주 등지로 이동해 독립군이 됐다" 등으로 방향을 달리 기술했다.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서도 교학사 교과서는 연표에서 "1945 일. 원자폭탄 피격"이라고 적었다. 이 역시 일본 입장의 서술이자 일본 특유의 피해자적 시각이라는 지적이다. 다른 교과서들은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고 서술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아울러 색인목록에서 안중근 의사를 빼버리면서도, 이토 히로부미는 수록하는 행태를 보였다.
도 의원은 교학사 교과서가 일본 후쇼사의 교과서보다 훨씬 일본에 유리하게 기술하고 있는 항목들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강화도 조약에 대해 후쇼사 교과서는 "조선에 국교수립을 강요했다. 불평등 조약이었다"고 적었으나, 교학사 교과서는 "개화파의 주장과 고종의 긍정적 인식에 따라 체결됐다"고 기술했다.
후쇼사가 "철도·관개 시설을 정비하는 등 개발했다"고 적은 철도사업에 대해 교학사는 "철도를 이용해 먼 거리 여행도 가능해졌고, 새로운 공간 관념이 형성됐다"고 사업의 목적을 배제한 채 무비판적 기술을 늘어놨다.
동포 6000여명이 학살당한 간토대지진의 경우는 "1923년 9월 1일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주민 자경단 등이 사회주의자 및 조선인, 중국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미흡하나마 길게 기술한 후쇼사와 달리, 교학사는 "1923년 광동대지진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는 참사를 당했다"고 약술했을 뿐이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관련 대목도 "유·무상 5억 달러의 협력금을 한국에 지불했다"는 후쇼사의 건조체와 달리 교학사는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확보된 대일 청구권 자금과 차관은 경제건설에 큰 힘이 됐다"고 사실상 일본을 치하했다.
간담회에서 역사정의실천연대 이준식 정책위원은 "이 교과서를 한국판 후쇼사 교과서라는데 내 생각에는 더 나쁜 교과서다"라며 "예컨대 독립운동이 이승만에 의해 시작되고 이승만에 의해 끝난 것처럼 찬양 일색인데, 이런 것은 공산주의에나 있는 교과서 체제"라고 비판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이신철 교수도 "이 교과서에서 논란 소지가 있거나 웬만한 것은 다 뺐는데도 298건의 오류나 문제가 새롭게 발견됐다"며 "새로운 학설이 너무 많아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인터넷 떠도는 이야기나 이런 것을 마구 썼기 때문"이라고 비꼬았다.
민주당 우원식 최고위원은 "우리 역사를 친일과 독재의 역사로 바꾸려는 자들이 날조를 벌이고 있다"며 "교육부 장관이 검정을 취소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고발을 하든지 해야 한다. 민족 정통성과 민주주의 지키기 위해 노력한 많은 분들을 위해 반드시 이 교과서를 막아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