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패션 전문 언론…느낌 아니까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동아일보가 박근혜 대통령의 옷과 머리스타일 등 패션을 분석해 특집기사를 싣자 다른 신문방송도 발동이 걸리나보다.


“박근혜 대통령 패션 점수는?… 색상 ‘훌륭’, 디자인 ‘글쎄’” (채널A)
“박근혜 대통령 패션외교 절정” (TV조선).

◈ 대통령 해외순방 기사가 패션 기사만 못해

최근 통치자 패션 기사의 포문을 연 것은 석 달 전 매경닷컴이다. 매경닷컴은 6월 8일 자 기사에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패션을 다뤘다.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깔맞춤 패션’의 교본... 여왕은 고집스러운 ‘깔맞춤 패션’으로 유명하다. 동화에 나올 법한 천진난만한 컬러로 투피스, 재킷 등 클래식한 옷과 모자를 맞춘다. 흔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컬러 플레이에 노련하다... 게다가 여왕의 패션은 모자에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입헌군주제 국가로 왕을 모시고 사노라면 여왕의 패션 기사야 당연하고 외국 언론마저도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에서 국가의 주인공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4개 면을 할애해 대통령 패션 기사로 도배한다면 시쳇말로 어이상실 수준이다.

어쨌거나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67%를 찍어 취임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박 대통령 패션 기사가 반영된 건 아니고 G20회의와 러시아 정상회담 등 활발한 대외활동의 결과라고 분석된다. 다만 정상회담 등 대통령의 해외 순방 성과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너무 부실해 패션분석 기사만도 못 하다. 청와대 홍보담당이야 대통령의 치적을 가능한 크게 키워 널리 알리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지만 언론은 아니다. 대통령 패션코디네이터의 임무와 기자의 임무가 다르듯 청와대 홍보실과 기자의 역할은 다른 것이다.

이번 G20 회의와 한·러 정상회담에서의 언론 보도들을 살펴보자.

먼저 박 대통령의 G20 연설을 보도한 대다수 언론의 보도는 다음과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열린 G20정상회의 제1세션 연설을 통해 선진국과 신흥국간 동반성장을 위한 G20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지역금융안전망(RFA)의 역할강화를 제안하면서 그 첫걸음으로 RFA간 경험과 정보공유를 위한 대화 채널 구축 등 긴밀한 협력체계 마련을 주창했다.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가교 역할을 자임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각도의 뉴스보도도 발견할 수 있다.

“청와대는 지난 6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박 대통령이 지역금융안전망(RFA) 역할 강화를 강조했고 이로써 선진국-신흥국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G20 주최국인 러시아가 지난해부터 준비해 12월에 이미 러시아 G20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내용이다.”
(뉴스 토마토 “청와대 자랑한 ‘G20 성과’ 朴대통령 덕? .. G20이 비웃을라 2013.09.08)

박 대통령이 이룬 핵심성과라고 청와대는 설명하지만 이미 G20 의장국인 러시아가 준비한 프로젝트와 제안들 속에 모두 담겨 있었고 청와대가 과대포장해 내놓았다는 분석이다. 다른 언론들의 기사는 청와대 보도자료와 담당자 설명을 인용하는데 그치지만 이 기사는 러시아 홈페이지 본문 내용을 직접 보여주며 근거로 제시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경남하노이랜드마크 컨벤션홀에서 열린 한복·아오자이(베트남 전통의상) 패션쇼에 참석하였다. (사진=청와대 제공)
◈ 관언 유착을 꿈꾸나?…느낌 아니까

비슷한 사례를 또 들어 본다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브리핑 내용도 있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한국이 극동개발에 참여하는 것을 아주 적극 권장하고 지원해 주겠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을 한·러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좋아서 푸틴 대통령이 밀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러시아는 제발 돈 싸들고 시베리아로 와 달라고 우리한테 오래전부터 사정하고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가 있는 서부 지역은 오래전부터 집중적으로 개발됐지만 연해주의 극동지역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 많다. 러시아 정부는 극동 개발 정책을 마련하고 극동 러시아의 중심 블라디보스토크를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함께 러시아의 세 번째 수도로 키우려고 몸부림치는 중이다.

최근 5년간 외국인 투자가 2배 넘게 증가했다고 전해진다. 우리에게만 특별히 내주고 지원해 주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이명박 정부보다 박근혜 정부가 더 유연한 대북정책을 펼칠 거라 기대하고 시베리아 개발에 한국을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다. 러시아의 구상은 한국에서 자본을 끌어들이고, 북한의 값싼 인력을 활용하고, 러시아는 자원을 대는 방식의 개발이다. 이로써 극동개발과 함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면서 동북아시아를 덮어가는 중국의 지배력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유라시아 철도 이야기도 꺼냈다. “개인적으로는 부산에서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한국과 러시아가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다. 이 꿈은 현대 정주영 회장의 꿈이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유라시아 횡단철도 관련 사업을 계열사인 현대로템을 통해 추진하고 있다. 현대로템이 유라시아 철도 연결에 적극 참여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세부 실행방안을 수립 중이라고 경제신문들은 보도한다.

사실 일본 한국 러시아를 통과해 유럽에 이르는 철도 구상은 70여 년 전에 나온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대동아공영권을 구상하며 일본에서 대륙으로 이어지는 철도를 구상했다. 이것은 일본 패망 이후 잠시 모습을 감췄다가 1980년대에 들어 일본 건설업체 오바야시구미의 ‘유라시아드라이브웨이’로 다시 등장한다. 도쿄에서 해저터널로 부산으로 건너 와 한반도를 관통해 러시아를 지나 영국 런던까지 2만 킬로미터를 고속도로로 달리자는 구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를 가장 먼저 외친 사람은 통일교 교주 고 문선명 씨. ‘국제평화고속도로’를 놓자며 사업조직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이것이 드라이브웨이에서 다시 철도로 바뀌어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모든 전임 대통령이 한 번 쯤 언급하며 관심을 가졌다. 한반도를 관통하는 남북철도 연결은 지난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언론은 통치자의 패션과 지지율을 거드는 역할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현안에 대해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에 가까운 지 국민에게 설명하는 역할이다. 왕국 아닌 공화국 언론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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