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벼락 통보에 가혹한 소명절차…빈곤층 두 번 울리는 심사

[위기의 빈곤 복지②] 과도한 심사에 탈락자도 공무원도 잇따라 자살

무상 시리즈 등 보편적 복지가 확대되고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빈곤층 복지는 상대적으로 정책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복지 누수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현장에서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대대적인 복지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혹독한 심사 기준에 갑자기 생계 지원이 끊겨 사망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CBS는 연속기획으로 위기에 처한 빈곤 복지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 날벼락 탈락 통보, 왜 떨어졌나 한줄 설명도 없어

기초생활수급 탈락자에게 제공되는 사전 안내문에는 정확한 탈락 이유와 소명 절차가 적혀있지 않아 수급자들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고 있다.(자료제공=빈곤사회연대)
복지 공무원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 심사를 일년에 두번씩 실시하는 것은 공무원들에게 과로를 부른다. 업무 과중에 자살하는 공무원들이 속출할 정도이다.

수급자 개개인의 생활 여건을 살피는 충분한 현장조사는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열악한 인프라 속에서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탈락 및 삭감 통보는 말그대로 날벼락처럼 닥쳐온다.

상하반기 두차례 실시되는 소득확인 조사에서 사회복지통합전산망(사통망) 상에 자격 요건이 미달된다고 확인되면 해당자들에게는 '복지대상자 자격변동 사전 안내문'이 발송된다.

그런데 안내문에는 왜 탈락했는지 이유가 나와있지 않다. 그저 탈락했고 며칠까지 소명하라는 문구만 나와있다. (사진참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안내문 옆 공란에 손글씨로 간단한 이유를 써놓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없는 경우가 많다.

전후 설명도 없이 열흘 안팎의 촉박한 소명기간을 제시해놓고 "소명기간 안에 별도의 연락이 없을 경우 조사 결과에 대한 이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겠다"고 경고한다.

그나마 소명기간과 방법을 제시한 것은 올해가 처음으며, 기간도 지자체별로 제각각이다.

안내문을 받아보는 수급자들은 보통 자신이 왜 탈락했는지, 어떤 소명자료를 제출해야하는지 몰라 막막해진다.

부산에 사는 박모(28)씨는 지난 7월 수급비 삭감 통보를 받았다. 왜 삭감됐는지 이유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동사무소에 찾아간 뒤에서야 아버지의 월급이 약 7만원정도 상승한 것이 원인이 됐다는 것을 알게됐다.

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 아버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동사무소에서 사정을 설명을 했지만 부양의무자 규정이 그렇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 무리한 자료요구에 가족관계 들추기까지... 가혹한 소명절차

일단 수급권 탈락 및 삭감 통보를 받고 나면 모든 소명 책임은 수급자의 몫이다.

장애인이나 고령자, 문맹(文盲)이 소명 자료를 준비하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무리한 자료를 요구하거나, 단절된 가족관계를 들추는 일도 흔히 발생한다.

대구에 거주하는 강모(28) 씨는 아버지가 6개월간 일용직으로 일한 소득이 잡혔다는 이유로 수급권 탈락 통보를 받았지만 실제 소득보다 높게 나와 있었다.


건설업체에서 면세를 위해 일용직 근로자의 소득을 높혀 신고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금액 차이가 난 것이다.

소명을 하려면 건설업체를 상대로 임금 부풀리기를 시인받아야 해 사실상 포기한 상태이다.

서울에 사는 박모(41) 씨의 경우 이의신청 과정에서 황당한 자료를 요구받았다.

어머니가 다른 사업체에 빚을 져서 형편이 어렵다고 해명하니 돈을 빌려준 곳의 사업자증명서와 회계장부를 가져오라고 요구한 것이다.

박 씨는 "빚 진 것도 미안한데 회계장부를 어떻게 달라고 하느냐. 담당 공무원도 준비하기 힘드실거라고 하더라. 비꼬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뭐냐"면서 "처음부터 제출이 불가능한 자료이다. 그냥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이다"고 울분을 토했다.

단절된 가족관계를 들춰내 수급자들을 두번 울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경기도 의왕에 거주하는 뇌병변장애 김모(54) 씨는 이혼 후 첫째 딸과 함께 살던 중 20년 가까이 연락이 끊긴 둘째 딸에게 소득이 발생했다며 수급권 탈락 통보를 받았다.

김 씨는 이혼한 남편과 지내는 둘째 딸과의 가족관계를 20년만에 다시 증명해야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임모(44) 씨는 가족들과의 관계 단절을 증명하기 위해 무려 2년간의 통화기록과 통장내역을 요구받았다.

그런데 아버지와 한 번 통화를 한 기록이 있고, 누나에게 9만원을 빌렸다는 이유로 관계 단절이 인정되지 않아 결국 수급권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처럼 기초생활수급자 심사 및 소명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온정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소명 절차를 밟는 도중에도 지원은 끊긴다. 삭감은 통보 다음 달부터 바로 적용되고, 자격 탈락의 경우 한 달의 유예기간 뒤 지원이 종료된다.

현장 활동가들은 수급자들이 소명자료를 제출하는 도중에 지원을 끊어버리는 것은 수급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한달치 급여만 안나와도 생계에 치명적인데 소명 절차를 진행하는 중에 지원액이 삭감되거나 끊겨 이중고를 겪고 있다"면서 "지금은 일단 뺏고 보는 구조인데 나중에 다시 환수하더라도 소명 기간 중에는 지원이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수급자 개개인의 상황을 체크하는 충분한 현장조사와 모니터링이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 공무원의 인력 확충이 절실하다.

수급자 탈락으로 인한 비관 자살은 최근 3년간 6명. 이들을 관리하는 사회복지 공무원들도 업무 과로로 올해만 4명이 자살했다. 양측에서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사회복지 공무원은 1만3399명이다. 지난해 기초생활수급자수가 139만4042명임을 감안하면 공무원 1명이 수급자140명을 담당하는 꼴이다.

사회복지 공무원 중에도 기초생활수급 담당자는 소수이기 때문에 한 명이 보통 수백명을 담당한다고 봐야한다.

정부는 올해 추가로 1500명을 신규 채용해 현장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만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참여연대 김은정 간사는 "현재와 같은 열악한 복지 인력 상황에서는 수급자 개개인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현장조사를 기대할 수 없다"면서 "인력 확충을 비롯한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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