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독일 기민당 당수인 메르켈 총리와 사민당 당수 슈타인브뤽이 벌인 TV토론에서 두 사람은 ‘좋은 일자리’를 놓고 맞붙었다. 오는 22일 독일 총선을 앞두고 ‘좋은 일자리’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독일은 10년 전 하르츠 개혁(Hartz Reform: 2003-2005)으로 불리는 대대적인 노동시장 개혁을 실시했다. 특히 월 급여 400유로 이하 일자리에 소득세를 면제하면서, 이른바 ‘미니잡’이라 불리는 시간제 일자리가 대거 생겨났다.
상당수 실업자들과 주부들이 면세 혜택이 있는 미니잡에 뛰어들었고, 한때 12%에 달했던 독일의 실업률은 최근 5%대까지 떨어졌다. 다른 유럽국가들의 실업률이 두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경이로운 고용 실적이다.
게다가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독일 기업들의 인건비가 낮아져 수출 부문에서 가격경쟁력이 커졌다.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독일은 유럽은 물론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갔고, 유럽의 재정위기마저 비켜났다.
◈‘좋은 일자리’ 사라지고 ‘미니잡’ 늘어…10년간 실질소득 감소
하지만 빛이 있는 곳에 그늘이 있듯, 기업들이 정규직(regular) 일자리를 쪼개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하면서 문제들이 생겨났다.
독일 거시경제정책원(Macroeconomics Policy Institute) 허조그-슈타인(Herzog-Stein) 박사는 “기업들이 비용절감의 방편으로 미니잡을 활용하면서, 시간제 일자리가 좋은(proper) 일자리를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정규직 비율은 해마다 줄어들어 2011년 기준으로 전체 독일 취업자 4천1백만명 가운데 정규직은 70% 수준인 2천9백만명이다. 반대로 2003년 160만명이던 시간제 취업자는 7년만에 730만명으로 급증했고, 현재 취업자 5명 중 1명이 저임금 미니잡에 종사하고 있다.
미니잡의 문제점은 임금이 월 400유로를 넘어서지 못해 태생적으로 저임금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월급이 400유로가 넘으면 절반 가까운 소득을 소득세로 내야하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들은 이것을 미니잡의 덫(mini-job trap)이라고 부른다.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인 미니잡 취업자가 늘면서, 독일의 실질 임금은 지난 10년 동안 2.9% 줄었다. 국가경제는 성장했지만 독일 국민은 오히려 궁핍해졌다.
박근혜 정부의 구호는 ‘국민행복시대’다. 고용률 70%를 달성해 국민이 행복한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용률 70%를 시간제 일자리 확대로 달성한다면 과연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독일의 경험은 우리에게 소중한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