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지난 4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된지 약 4시간 만에 의원회관에서 이 의원을 강제구인했다.
이석기 의원이 다음날 영장실질심사에 응하겠다고 밝혔으나 국정원은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직원 50∼60명을 투입해 강제구인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욕설이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법원이 구인장을 발부한 만큼 합법이기는 하지만 국회를 무대로 국정원 연출, 이석기 주연, 국정원 직원·경찰관이 조연을 맡은 ‘공안쇼‘가 벌어졌다"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현직 국회의원이 가면 어디로 도망을 가겠느냐”며 “국정원이 의원회관에 진입한 것을 보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 위기 때마다 반전카드로 정국 장악
국정원이 정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에서부터 시작해 거의 날마다 뉴스의 중심에 서고 있다.
국정원은 정치권에서 국정원 개혁 논의가 불붙고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한 직후인 지난 6월 24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전격공개하며 정국을 ‘NLL포기’ 논란으로 전환했다.
국정원은 이어 지난 2010년부터 내사했다는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의 사무실과 집에 대한 압수수색을 지난달 28일 실시하며 정국을 ‘이석기’로 완전히 장악했다.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에 대한 공개수사에 착수할 무렵 검찰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신종 매카시즘’이라고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지난달 26일 원 전 원장의 첫 공판에서 검찰이 "구체적 근거 없이 개인·단체에 종북 딱지를 붙여 온 원 전 원장의 행태는 신종 매카시즘”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를 두고 “국정원의 신의 두 수”라고 평가했다. 국정원이 위기에 몰릴 조짐이 보일 때마다 반전카드를 내밀며 정국을 일거에 뒤엎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같은 정국 반전에 힘입어 새누리당은 “야권연대를 통해 국회 안에 종북세력의 교두보를 마련해줬다”며 “민주당은 반성문을 써야 한다”고 기세를 높였다.
◈ 간첩 증언 확보하려 폭행 주장, 결국 무죄 선고
국정원이 이처럼 정국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과거 유신시대나 80년대 군부독재 때처럼 사회전반에 공포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지난 4일 화분을 이용한 도청이 우려된다며 “법사위원장실의 화분을 복도에 모두 내놨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누가 그러더라고 ‘화분을 이용해 도청할 수 있다’고. 요즘 야당 의원이 이렇게 살고 있어요. 무서워서 어디 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이탈주민의 명단을 북한에 넘긴 혐의로 기소됐으나 지난달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 유모씨의 사례는 정보기관 공포정치의 재림을 보는 듯 하다.
국정원이 수사 과정에서 ‘간첩‘이라는 결정적인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유씨의 여동생을 압박하고 폭행했다는 주장이 불거진 것이다.
실제로 법원은 유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의 유력한 증거라는 유씨 여동생의 진술에 대해 “객관적인 증거와 명백히 모순되고 진술의 일관성 및 객관적 합리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 "인적교체는 일시적, 제도적 개혁해야"
이같은 상황에 대해 1987년 제헌의회그룹 사건으로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수사를 받은 적이 있는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이렇게 밝혔다.
“국정원이 과거의 영화, 권력을 되찾으려 하는 것 같다. 현재 벌어지는 일은 국정원의 자기방어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민 의원은 그러면서 “인적 교체는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이다”며 “제도적인 개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입법을 통한 국정원 개혁을 강조했다.
반면 명지대 신율 교수는 “오비이락의 측면이 없지 않지만 국정원이 뭐를 하든 정치적 의혹을 피하기는 어렵다”며 “국정원이 적법성을 갖고 있는 만큼 비정상적 상황은 아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