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안으로 들어서니 강렬한 느낌의 레드톤과 시원한 느낌의 블루톤 건물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저층부의 진한 색상이 3층ㆍ5층ㆍ10층으로 올라갈수록 연해지면서 색감이 번진다. 마치 무지개를 보는 듯하다.
김포 고촌 힐스테이트 1단지는 붉은색 계열로 핫(Hot)한 느낌을 풍긴다. 2단지는 파란색 계통의 쿨(Cool)한 디자인을 채택해 차별화했다.
화려한 외벽만 존재해 눈을 피곤하게 하지도 않는다. 중간중간 베이지색 계열의 일반 아파트 디자인을 심었다. 쉽게 말해 10개 중 5개가 화려한 건물이라면, 나머지 5개는 차분한 색상의 아파트를 배치해 안정감을 줬다는 얘기다.
김포 고촌 힐스테이트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색채 디자이너 장 필립 랑클로(Jean Phi lippe Lenclos)가 색채 매뉴얼을 처음 선보인 아파트로 유명하다. 200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우수디자인 상품으로도 선정됐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김포 고촌 힐스테이트 이후에 지어진 단지에는 장 필립 랑클로의 아트칼러를 많이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건설은 서울 삼성동ㆍ북한산ㆍ반포동 등에 지어진 힐스테이트 외벽에 랑클로의 아트컬러를 도입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강서구 가양동에 건설 중인 '강서 힐스테이트'에도 아트칼러를 사용한다. 각 동마다 빨간색이나 녹색 등을 적용해 화려한 외관으로 꾸밀 계획이다. 강서 힐스테이트에는 내년 6월까지 총 2603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포스코건설은 브랜드 중심의 기존 주택시장에 디자인 경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어넣겠다는 각오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알레산드로 멘디니와의 디자인 개발 작업은 현재 중간단계 정도 진행됐다"며 "이르면 올 연말쯤 개발이 끝나 적절한 디자인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심상치 않은 아파트 디자인 특화
아파트 외관 가꾸기는 민간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구 대현3지구에 건설 중인 '대현3지구 LH아파트'는 도시 슬로건인 '컬러풀 대구'에 맞게끔 단지 외관을 꾸밀 계획이다. 대구의 시화市花인 목련의 순결함과 팔공산의 자연적 요소도 단지 내에 표현된다. '재도약 대구'를 형상화한 녹색ㆍ연두색ㆍ갈색ㆍ빨간색 등 줄무늬 패턴을 아파트 외벽마다 높낮이를 달리해 입힌다. 색채의 강약으로 원근감을 조절함으로써 단지전체에 리듬감도 살릴 계획이다.
이촌 센트레빌은 아파트의 절반 가량을 커다란 창모양 필로티로 설계했다. 필로티는 벽이 없는 기둥구조를 말하는데 앞뒤가 뚫려 있어 조망권 확보에 유리하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애초 설계는 특이한 디자인을 위해서였다라기보단 뒤에 위치한 아파트의 한강 조망권을 위한 것이었다"며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아파트의 개성을 살린 듯하다"고 설명했다.
102동 출입구에서 군용가방을 메고 나오는 미국 여자군인의 모습이 보인다. 옆에 있던 60대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이곳엔 미군 외에 일반 외국인도 꽤 많이 산다"는 답이 돌아왔다. 단지 입구에는 외국인전용 부동산임대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 유리창에 붙어 있는 '이촌센트레빌 40평, 전세가 6억5000만원'이라는 홍보문구가 인상적이다.
◈수요자 끌어들이는 적절한 수단
최근엔 한옥 디자인을 첨가한 아파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건설 중인 서울 용강동 '래미안 마포 리버웰'은 공동시설을 한옥으로 디자인했다. 이 아파트의 사업지 내에는 구한말 지어진 한옥 3채가 남아 있는데 삼성물산은 이를 헐지 않고 주민공동시설과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할 방침이다. 또한 아파트 단지 곳곳에 과거 궁궐 건축 때 쓰던 전돌로 조경시설을 만들고 주변에 느티나무를 심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최근 건설사들이 아파트 디자인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업계에선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된 아파트시장'을 이유로 꼽는다. 부동산 호황기 때는 아파트가 분양시장에 나오자마자 완판이 되곤 했다. 디자인이 촌스럽건 허름하건 상관없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불황이 장기간 지속되다 보니 경향이 바뀌었다.
같은 값이면 좀 더 예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갖춘 아파트를 선호하는 수요자가 늘어난 것이다. 디자인 작업비용이 일반 건축설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도 건설사들이 아파트 외형꾸미기에 몰두하는 이유다. 적은 비용으로 경쟁사에 비해 차별성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