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향해 동해와 맞닿아 일렬로 내려오는 해협, 아키타현과 야마가타현, 그리고 니이가타현이 우에츠 3현이라 불리는 오늘의 주인공이다.
아키타(秋田) 사람들에게 현의 상징물을 물어보면, 일본 전통 침엽수인 삼나무와 오염 없는 자연에서 얻은 고급 쇠고기와 쌀, 그리고 날렵한 손놀림으로 깎아낸 고케시 조각상 등을 꼽는다.
하지만 외부인의 눈으로 보기에 아키타는 이보다 훨씬 귀한 보물을 속살 깊이 감춰두고 있는데, 온천이 그 주인공이다. 사실 일본 전역에 산재한 온천이야 서울서 김씨를 만나는 것만큼 흔한 일이지만, 아키타의 온천은 그 규모로나 알려진 명성으로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어서 고단한 일상, 휴식을 찾아 떠난 여행자의 마음을 한층 더 설레게 한다.
일본 열도 전역이 그렇듯이 아키타현 역시 평지보다 산지의 비중이 훨씬 높다. 해안을 제외한 삼면이 산지로 형성된 아키타현의 복잡한 산새는 곳곳에 원천지를 만들어 놓았고, 이 온천수를 이용해 산허리와 아랫마을에는 투박한 시골 정취를 그대로 담은 전통여관들이 그 자리를 지켜 왔다.
특히 현의 경계가 나뉘는 남부와 동부에는 중소규모 온천과 혹은 사설 온천을 보유한 전통여관들이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그 온천의 품질이 가히 일품이다.
바쁜 일정을 마친 저녁, 취재진이 유카타로 갈아입고 온천탕, 그 중에서도 노천탕을 찾았다. 유백색 물 위로 위엉청 밝은 달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예전 하늘서 내려온 선녀가 온천욕을 하고 싶었으나, 그 물빛이 너무 맑아 몸이 들여다 보일까 망설이는 것을 보고 하늘에서 물빛을 변형시켜 주었다는 전설이 스민 곳이다.
여기서 일본 온천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갖는 환상 하나. 일본 온천은 혼욕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하지만 아니다. 무슨 대답이 이리 싱겁냐 하면, 온천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하는 경우에는 혼욕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혼욕탕이 존재한다 해도 남녀가 사용하는 시간을 구분해 팻말로 걸어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괜히 응큼한 기대는 말지어다.
그렇다면 ‘그렇다’는 대답은 무얼까. 이는 말 그대로 사설 온천이 아닌, 산 중턱 원천 근처에 있는 우리로 치자면 공중 약수터 같은 온천의 경우를 말하는데 이럴 때는 부부는 물론이고 조부모와 손자, 손녀가 함께 몸을 담그곤 하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던 일행들이 발을 담그고, 다리를 담그고, 차츰 깊은 곳으로 몸을 뉘였다. 산 중턱 공기는 싸늘하기만 한데 원천수가 그대로 공급되는 오쿠야마 온천은 그 온도가 80도에 육박해 온몸을 물 속에 담근 사람들의 말소리가 점차 잦아든다.
일행이 여장을 푼 ‘오쿠야마 여관’ 역시 4대째 가업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 온천장이다. 이곳에는 열 개 남짓한 객실과 노천탕과 실내탕이 남녀 각각 하나씩, 그리고 시간이 구분된 혼탕 등 5개의 온천이 갖춰져 있다. 이곳의 온천수는 강산성으로 유명한데 특히 관절염과 피부병 치료효과가 탁월해 일본 전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원천지에 가까워질수록 희뿌연 수증기 구름 사이로 시야가 흐려져 한치 앞의 일행이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오야스쿄 다이훈토는 바위에서 흘러내린 원천이 흘러가는 강 위로 다리길을 설치해, 자연스럽게 도보 관람을 가능케 하면서도 원천수가 흐르는 바위는 만질 수 없게 해놓았다. 바위 틈새서 솟는 원천수 자체는 그 온도가 상당히 높아서 사람이 그냥 만졌다가는 화상을 입기 쉽상이다.
하지만 그 온도는 대기에 노출되면서 급속도로 하강해 지하수를 만나 흐르는 강물은 손을 댔을 때 딱 좋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그곳에서 진짜 노천욕을 즐기는 가족단위 온천광들을 종종 마주할 수 있다.
12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원천에서 도보로 30분만 걸으면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가와라게 지옥을 만날 수 있다. 본래 유황 가스가 다량 분출되었던 화구인 가와라게 지옥은 현재까지도 미비하지만 꾸준한 양의 가스가 분출되고 있다고 했다.
어렴풋이 지옥이 보일 때쯤 일행은 “어젯밤 저 봉우리에만 눈이 내렸습니다”라는 안내자의 말에 깜빡 속아넘어갔다. 원거리에서 보면 마치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만들어낸 풍광 같지만, 현장에 도착해보면 유황 가스로 인해 퇴적층의 색깔이 하얗게 변해버린 지역이다.
유황가스는 반경 몇 킬로미터 이내의 대지를 초토화시켜 이곳에서는 그 어떤 식물도 자생하기 못한다. 입동을 앞두고 붉게 물든 산새와 이곳의 흰 대지가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