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히티'에서 '모레아'로... 그 경치가 점입가경


적당한 차의 흔들림이 졸음을 부른다. 가늘게 뜬눈으로 바라보는 차창 밖 풍경이 '현실세계일까' 자꾸 의심이 간다.

아침 일찍 나선 해안가 드라이브. 아라비아 숫자 8을 옆으로 누인 듯한 타히티 섬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표주박 모양 같기도 한 타히티 섬은 섬 중앙의 잘록한 부분을 기준으로 좀 더 큰 쪽이 '타히티 누이(Nui:크다)', 작은 쪽이 '타히티 이티(Iti:작다)'로 불린다.

바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 곳이지만, 산이 바다로부터 시선을 앗아간다. 오르락내리락 울퉁불퉁한 모습이 독특하다. 봉우리 사이사이에는 물안개를 피우는 폭포가 신비롭게 흘러내린다. 야자수가 온 산을 뒤덮고 있는 모습 또한 국내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라 유심히 살피게 된다.


타히티와 종종 비교되는 인도양의 몰디브는 섬을 둘러싼 산호초, 하늘 빛 바다, 수상방갈로를 가진 탓에 타히티와 엇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몰디브엔 산이 없다.

산과 바다가 자아낸 이 날의 영상은 잠에서 덜 깬 몽롱함과 뒤섞여 마치 환영(幻影)인양 머리 속에 각인된다.


118개 섬으로 이뤄진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대명사 타히티 섬을 떠나 다른 섬에 가보기로 했다. 30분간 배를 타고 갈 곳은 여기서 북서쪽으로 15km 떨어진 모레아 섬.

"우와∼이야∼와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입에서 한결같은 함성이 나온다. 선실 안에 앉아 있을 수 없어 갑판위로 올라왔더니, 전망 좋은 자리는 이미 다 찼다.

마치 로데오를 연상시키는 배의 출렁거림에 나름의 균형 감각을 발휘하며 모레아 섬을 응시한다. 강력하게 불어오는 맞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고개를 든다. 머리카락들이 빠져버릴 듯이 휘날린다.

배 아래의 물빛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새파란 태평양 물위를 가르던 배가 섬 주위를 둘러싼 산호초 위의 하늘빛 바다로 접어들고 있다.

수백만 년 전의 화산활동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모레아 섬은 중앙에 솟은 1,000m 높이의 산들 탓에 험하고 강한 인상부터 안겨준다. 고갱이 이 섬을 보고 표현한 '고성 같은 섬'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망치로 방금 깬 돌의 단면을 보는 듯한 산도 있고, 퍼먹는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한번 푹 떠먹은 듯한 산도 보인다. 그 중 하나의 산 위로 차를 타고 올라 주위를 굽어내려다 봤다. 이번 여행의 전체 일정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크나큰 감동은 행복감을 동반하는 것인가. 하늘 빛 바다 위에 떠 있는 방갈로와 바람에 휘날려 모두가 한쪽 방향을 향하고 있는 야자수 나뭇잎. 계속 보고 싶어서, 이 장면을 절대 기억하고 싶어서 눈에 핏발이 서도록 깜빡이지 않았다.

어느새 송글송글 맺힌 땀이 하늘빛의 물로 뛰어들 것을 요구한다. 그 전에 목부터 축이고자 물이 담긴 페트병을 집어들었는데, 겉면에 웬 아기얼굴 사진이 조그맣게 들어가 있다. 미아 찾기 운동인가 했더니, '아기가 마셔도 안전할 정도의 깨끗한 물'임을 알리는 표시라 한다.

셔틀보트를 타고 모레아 섬 가까이의 작은 무인도로 이동했다. 태평양에 빠져들 시간이 왔다. 일행들의 눈을 피해 '무인도 야자수 숲 속'에서 수영복을 갈아입자니 왠지 야시시하다.

물안경과 스노클을 착용하고 물 위에 엎드려본다. 산호가 보이고, 떼지어 다니는 물고기가 보인다. 갑자기 배 밑을 지나가는 거대한 검은 물체. 정체는 가오리다. 조련 받은 가오리가 무인도 앞 바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양 날개를 나풀거리며 겁도 없이 다가온다. 한편, 몇몇 일행은 수영실력을 발휘하며 건너편 무인도까지 헤엄쳐간다. 그들의 멋진 뒷모습에 수영장을 등록해야겠다는 불타는 의지가 일시적으로나마 솟구친다.

감동의 도가니 속을 헤매던 일과를 마무리하고 숙소로 향했다. 타히티에 처음 도착하던 날, 공항에 붐비던 신혼여행객들을 보고 느꼈던 심난함이 다시금 몰려온다. 환상적인 분위기의 워터방갈로에 홀홀 단신 입장. 테라스에 놓여진 해먹에 누워 방금이라도 쏟아질 듯한 하늘의 별들을 보며 잠을 청한다. 꿈속에선 테라스에서 바다로 연결된 계단을 걸어 내려가 옆 방갈로로 헤엄쳐 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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