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결정에 가장 큰 가늠자가 되는 고용 상황과 노동시장 여건이 크게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일자리 증가 속도 기대 이하
6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고용 지표를 보면 미국의 8월 전국 평균 실업률은 7.3%로 전달과 비교해 0.1%포인트 하락하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인 2008년 12월 이후 거의 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하지만 실업률 자체로는 속 빈 강정에 가깝다.
지난달 비농업 부문 새 일자리는 16만9천개 늘어나는데 그쳐 시장 전망(18만개)을 밑돌았다.
노동부는 이날 6∼7월 일자리도 애초 발표보다 7만4천개나 줄였다.
상식적으로 일자리가 늘면 실업률이 떨어지는데 새 일자리가 지지부진함에도 실업률이 하락하는 것은 구직자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느낀 나머지 일자리 찾기를 포기하고 노동 시장 자체에서 떨어져 나간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취업 연령대 인구 중 취업자나 구직자를 더한 노동 시장 참가율이 1978년 8월 이후 최저치로 내려앉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초 단행된 세금 인상과 연방 정부의 예산 자동 삭감, 이른바 시퀘스터(sequester) 등의 악재가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사실인 셈이다.
◇ 연준, 이달 FOMC 회의서 격론 예상
이날 고용 지표가 나오자마자 연준이 이달 FOMC 정례회의에서 월 850억달러인 채권 매입 액수를 700억달러 안팎으로 줄일 것이라는 관측도 급속도로 힘을 잃는 형국이다.
연준은 지난번 회의에서 구체적인 출구 전략 시간표는 제시하지 않았으나 '연내'(later this year) 양적완화(QE)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방침은 재확인한 바 있다.
7월 30∼31일 회의에서 대다수 위원이 고용 등 경제 상황이 개선되면 월 850억 달러인 국채 및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채권의 매입 규모를 연내 축소할 수 있다는 벤 버냉키 의장의 이른바 출구 전략 시간표에 공감한 것이다.
올해 FOMC 회의는 이달을 포함해 10월, 12월 세 차례 더 열린다.
고용 상황은 물론 국내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점도 연준이 이달 '행동'을 취하기에는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최근 발간한 베이지북에서 12개 연방준비은행 관할 지역의 경기 동향을 종합한 결과 전반적 경제 활동이 '완만하고 점진적'(modest to moderate)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올해 상반기 내내 같은 표현의 전망을 했던 점을 고려하면 최근 들어 경기가 확연하게 회복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연준 내부에서도 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있지만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연준이 이달 말부터 자산 매입 규모를 85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줄여야 한다"고 밝혔지만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양적완화 축소를 위해서는 물가 상승과 경제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면서 "연내(later this year)에 연준의 자산 매입 규모 축소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이달 FOMC 회의에서 양적완화 축소 시기를 둘러싼 격론이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8월 고용동향으로 연준의 양적완화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연준이 9월부터 출구전략을 시행할 것이라는 게 다수 견해다.
미국의 경제전문방송인 CNBC가 고용동향 발표 직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양적완화 축소 시기를 9월로 예상한 시장 전문가의 비율이 43%로 가장 많았다. 이는 지난 7월말 조사의 48%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 양적완화 점진적 축소 예상
오바마 대통령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양적완화 정책의 점진적 추진을 시사했다.
그는 "나사를 망치지 않으려면 지나치게 조여서는 안 된다. 양적완화 축소가 합리적 한도 내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말하는 '점진적 추진'이 양적완화 축소 시점을 늦추겠다는 것인지, 양적완화 규모를 조금씩 축소하겠다는 것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도록 하겠다는 점은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마이클 페롤리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전날 한국 특파원과 간담회에서 "연준이 양적완화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준의 채권 매입 축소 결정이 신흥국에 줄 파급 효과도 미국 연준이 고려해야 할 항목이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BRICs)와 동남아시아 신흥국들이 이미 화폐 가치 하락과 자금 이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양적완화 축소가 이들 국가에 또 다른 위기를 안겨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6일 발표된 미국의 고용 지표는 어쨌거나 연준 정책 입안자들의 머리를 더 아프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