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었던 한국 시장은 당시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며 공황 상태에 휩싸였다.
2007년 사상 처음으로 2,000선을 돌파하며 기세를 올린 코스피지수는 리먼 파산신청 당일 6.1% 폭락을 시작으로 연일 추락했다.
10월 24일에는 연초의 딱 절반인 938.75까지 떨어져 말 그대로 '반토막'이 났다.
결국 그해 코스피지수는 연초보다 39.3% 하락한 1,124.47로 한 해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는 같은 해 10월 27일에는 연초의 거의 3분의 1인 261.19까지 무너졌고, 연간 하락률 53.0%라는 참담한 기록을 남겼다.
원·달러 환율은 연초에 900원대를 유지하다가 8월 미국 월가의 불안이 커지면서 슬금슬금 1,000원대로 올랐다.
그러다가 리먼 파산신청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폭등, 한 때 1,508.00원까지 치솟으며 과거 환란의 트라우마를 되살아나게 했다.
한국 시장이 얼마나 요동쳤는지 가장 압축해서 보여준 것은 국가 부도 위험성의 지표인 국채 신용부도스와프(CDS) 가산금리였다.
연초에 48.500bp(0.485%)였던 국채 5년물 CDS 가산금리는 10월 들어 로켓처럼 솟구쳐 10월 27일에는 무려 674.875bp를 찍으면서 공포를 일으켰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한국 금융시장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코스피지수는 2009년∼2010년 꾸준히 반등, 2010년 하반기에 1,900선을 되찾았고 지난 4일 현재 1,933.03을 나타내고 있다.
코스닥지수는 이보다 더 빨리 되살아나 2009년 상반기에 500선을 회복했고 4일 현재는 526.16이다.
원·달러 환율도 2009년 한때 1,570.65원(3월 2일)까지 뛰었다가 이후 점차 하락, 4일 현재 1,094.65원을 나타냈다.
국채 5년물 CDS 가산금리는 2009년 상반기까지 200bp 이상 고공비행을 계속하다가 이후 내려와 지난 4일 현재는 79.500bp로 안정을 되찾았다.
특히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전망으로 세계 신흥국 금융시장이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도 한국 시장은 탄탄한 모습을 보여 주목을 받고 있다.
연준의 양적완화 출구 전략이 가시화된 지난 6월부터 최근까지 달러화 대비 인도 루피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는 각각 15.4%, 13.6% 폭락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에 원화의 가치는 2.97% 상승했다.
이에 따라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최근 신흥국 위기에서 한국이 단기외채 관리 등의 준비를 통해 위기를 잘 견디는 승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주가, 국채 CDS 가산금리 등 다른 주요 지표들도 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 등 취약한 다른 신흥국들이 급격히 악화하는 동안 한국은 비교적 큰 움직임 없이 안정을 유지했다.
또 미국의 유동성 축소 전망으로 선진국 자금이 신흥국에서 일제히 빠져나가는 와중에도 한국 증시의 외국인 투자자들은 7∼8월 총 2조8천억원 어치를 순매수해 한국 시장에 대해 흔들림 없는 믿음을 보였다.
이 같은 흐름은 경상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4.9%에 이르는 등 탄탄한 경제 기초여건(펀더멘털)을 갖춘 한국이 그렇지 못한 취약한 신흥국들과 차별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금융투자업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만 보고서 안심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국외 변수의 영향력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상황에 따라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사상 유례없는 양적완화 조치의 중단과 제조업 중심의 경제 회복에 나서면서 신흥국들의 어려움이 한동안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의 경기 '경착륙' 우려, 일본 아베노믹스의 실패 가능성, 계속되는 유럽 경제위기 등 갖가지 복병들이 있어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환란과 세계 금융위기 등의 경험을 통해 외환관리 등에서 많이 학습한 것 같다"며 "단기외채 관리, 거시건전성 조치 도입, 외화보유액 관리 등을 통해 위기 가능성을 이전보다 많이 줄인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당장 인도나 인도네시아가 무너지면 아무리 한국 시장이 튼튼해도 휘말릴 수밖에 없다"며 "자만하지 말고 안으로는 견고한 외환관리 체제를 유지하고 밖으로는 세계적 금융안전망 구축 등을 계속 추진하며 위기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