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기와 RO, 5월에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커밍아웃 한 것 같다
- 국정원, 정말 이 문제를 이용하려 했다면 국정조사 직전에 터뜨렸을 것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00~20:00)
■ 방송일 : 2013년 9월 4일 (수)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 정관용> 이석기 의원 사태와 관련해서 요즘 새누리당의 하태경 의원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과거 전대협에서 활동하고 밀입북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었었어요. 그런데 그 후에 방향을 바꿔서 북한인권운동에 매진해 왔던 하태경 의원. 크게 봐서 이석기 의원과 비슷한 이른바 민족해방계열 NL파 이쪽의 운동권 출신입니다. 그래서 그 내부를 잘 알기 때문에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여러 의견을 개진하면서 이슈를 주도해 가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 3부에 하태경 의원을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하태경> 네, 안녕하십니까? 하태경입니다.
◇ 정관용> 제가 간단히 얘기했습니다만 우선 하 의원 본인을 소개를 해 보세요. 그러니까 전대협활동이 그게 몇 년도죠?
◆ 하태경> 한 20년 넘었죠.
◇ 정관용> 그러니까 그러면.
◆ 하태경> 86년에서 한 89년, 90년 이때까지.
◇ 정관용> 밀입북 사건에 연루된 건 언제였죠?
◆ 하태경> 그때가 91년입니다.
◇ 정관용> 91년?
◆ 하태경> 네, 끝물이었죠.
◇ 정관용> 어떤 밀입북 사건이었어요?
◆ 하태경> 유명한 사건은 임수경 사건이고요. 그 이후에도 학생들이 몇 차례 더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성용승, 박성희. 남학생, 여학생 두 명이 8월에 하는 학생축전입니다.
◇ 정관용> 축전.
◆ 하태경> 그 행사 참석하는 명목으로 넘어갔었죠. 그래서 그때 범민련이라는 게 있었고요. 학생단체는 범청학련이라는 것을 그때 만들었어요.
◇ 정관용> 범민련은 이제 북한 그리고 한국 그다음에 해외 이 세 가지가 합친 게 범민련이고.
◆ 하태경> 범민련이고. 북한, 해외, 한국의 학생들을 따로 또 만들었죠. 그때 만들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바로 이런 밀입북 등등에서 하태경 의원은 그럼 어떤 역할을 하셨던 거예요?
◆ 하태경> 제가 주로 전략을 담당했죠. 왜 범청학련을 만들어야 되고. 방향은 뭐고. 그리고 남북이 공동합의문을 작성합니다. 작성을 하면 제가 합의문을 올려주면 북한 애들이 오케이하면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그래서 제가 주로 당시에 적용 법률이 제가 직접 북한에 넘어간 건 아니니까. 잠입탈출은 아니었고. 회합통신 이런 것 이적단체 구성.
◇ 정관용> 그 이적단체가 그러니까 범청학련?
◆ 하태경> 그때는 범청학련 만들어지기 전이었어요. 계획단계에서 제가 구속되고 나서 그 이후에 만들어져서요. 그 당시에는 제가 있던 전대협 그때 조통위원회라고 했는데, 조국통일위원회. 전대협이라는 게 대중단체인데. 좀 놀랐어요. 그 대중단체의 조국통일위원회만 떼어내서 그걸 이적단체로 법적으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구속됐던 게 언제였죠?
◆ 하태경> 구속됐던 게 91년 여름해서 한 2년 살다 나왔습니다.
◇ 정관용> 2년 93쯤에 나오셨고?
◆ 하태경> 봄에, 봄에 나왔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어떤 생각을 바꾸시고 활동을 바꾸시게 된 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 하태경> 그리고 조금 학생운동 출신들 중에 사람마다 편차가 좀 있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사회주의적인 성향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CA, PD 그룹이 사회주의 성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을 많이 하고. 우리 NL 그룹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서 민족통일운동, 반미운동 이런 걸 많이 했는데. 그런데 민족주의가 우파 민족주의가 있고 좌파 민족주의가 있는데. NL 운동권은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 항일운동에 정통성이 거기 있다 보고 우리 한반도 문제를 접근해요. 그러니까 북한에 정통성이 있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친북화 되고. 그러던 생각이 북한의 현실을 직시한 거죠. 당시에는 80년대는 북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90년대 중반부터 탈북자가 대거 나오고 북한의 실제정보, 선전정보가 아니고. 정치범 수용소가 존재하고 이런 충격적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내가 알던 북한이 허구였구나. 그래서 정통성 문제가 아직도 논란이 되는데. 저는 이승만 대통령을 상당히 부정했었어요. 친일파랑 합작을 해서 협력을 해서 정권을 만들고.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그래도 상당히 정통성 있는 분이구나. 그리고 친일파 문제도 이라크 문제를 보면서 미국이 이라크 공격하고 나서 이라크 재건을 하잖아요. 그런데 후세인 밑에 있는 관료들을 다 쫓아 보냈어요. 그러고 나서 이라크 재건에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걸 보면서 이승만이 현명했구나.
◇ 정관용> 관료를 그냥 쓴 것은 그럴 수밖에 없을 수도 있구나.
◆ 하태경> 그렇죠. 네이션 빌딩을 하려면 일단 리더는 친일이면 안 되지만 그 밑에 쓰는 사람들은 리더가 통제할 수 있다면 능력위주로 뽑았어야 됐다.
◇ 정관용> 그래서 그런 식으로 이승만 내지는 친일 문제 등등에 대한 생각이 바뀌시면서. 결정적으로 그러면 그게 몇 년도쯤?
◆ 하태경> 고민의 시간이 깁니다. 제가 북한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게 93년 정도부터 변화가 있기 시작해서요. 한 5년쯤 걸립니다.
◇ 정관용> 그러면 그 5년 사이에는 아무런 활동도 안 하셨어요?
◆ 하태경> 5년 사이에는 주로 영어공부도 열심히 했고요. (웃음) 돈도 좀 벌었고요. 인생의 좌표가 딱 있어야. 운동권 출신들이 그런 게 있습니다. 좌표가 설정되기 전에는 적극적으로 못 삽니다. 그래서 건강도 좀 안 좋았는데 챙기고 그랬었습니다. 그리고 토론 많이 하고 논쟁 많이 하고.
◇ 정관용> 그러니까 북한인권 운동을 해야 되겠다라고 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습니까?
◆ 하태경> 그래서 한 5년간의 과정을 통해서 북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접하고 특히 탈북자들 많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북한을 실제로 들여다보니까 이 김일성, 김정일이 제가 싸웠던 박정희, 전두환보다도 수백 수천 배 나쁜 놈들인 거예요. 아직도 그때 지금도 비슷한데 그때도 운동권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었어요. 불의를 보면 못 참고. 그래서 내가 전두환, 노태우 불의의 정권에 맞서서 내 20대 초반을 감옥에서 보내고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것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더 나쁜 김정일을 가만히 둘 수 없다, 그래서 뭘 내가 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북한인권 운동이 당시 생소했어요. 북한은 인권이 있는 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북한인권 민주화 이런 운동을 하자. 이런데 어떻게 할 거예요. 북한 안에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고민하던 끝에 제가 미국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중국유학으로 턴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탈북자들이 중국에 대거 와있다고.
◇ 정관용> 대북정보를 훨씬 많이 얻을 수 있죠.
◆ 하태경> 그렇죠. 그리고 보통 유학을 가면 북경이나 상해로 가잖아요. 저는 만주로 갔습니다. 탈북자들을 만나고를 북한에 더 가까운 데서 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제 계획대로 됐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리고 쭉 그 한길로 오시다가 정치권으로 들와서 지금 초선의원이 되어 있는 상태인데. 정확히 말하면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90, 1년2년 그때까지는 아주 핵심 이론 전략가로서 그쪽 운동을 담당하셨고. 93년 이후로는 그쪽 운동을 같이 하시지는 않았던 거네요?
◆ 하태경> 않았죠. 91년까지 하다가 감옥 2년 살고 93년부터는 방황하고 노선전환을 한 겁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이석기 의원을 80년대 중반부터 91년까지 한 5, 6년 활동할 때 알고 있었습니까?
◆ 하태경> 모릅니다. 저보다 학번으로 치면 4, 5년 많고 하기 때문에 전혀 몰랐습니다. 학교도 완전히 다르고.
◇ 정관용> 그럼 그 활동 기간에는 전혀 듣도 보도 못했습니까?
◆ 하태경> 전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 정관용> 언제 이석기라는 이름을 알게 됐습니까?
◆ 하태경> 이석기라는 사람을 알게 된 거는 최근입니다. 재작년쯤 이석기 의원이 민족문제혁명당이라고.
◇ 정관용> 민혁당, 줄여서.
◆ 하태경> 민혁당 당원이었고 그 활동을 했는데. 민혁당을 만들었던 김영환 씨가 전향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민혁당 사람들이 대거 전향을 합니다. 그쪽 사람들을, 그리고 그쪽 사람들이 북한인권 쪽으로 많이 넘어왔어요. 그러니까 아주 자주 만난 거죠.
◇ 정관용> 김영환 씨도 지금 그쪽 활동을 하시지 않습니까?
◆ 하태경> 하다가.
◇ 정관용> 탈북자 지원 활동을 하시죠.
◆ 하태경> 그렇죠. 그런 활동을 했었죠. 그래서 그쪽 분들 자주 만나다 보니까 그쪽 동네이야기를 많이 들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이석기라는 사람의 존재를 인지하게 됐습니다.
◇ 정관용> 그 존재가 그러니까 김영환 씨나 이런 분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른바 그 민혁당 그쪽 그룹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이었던 거예요? 또 어떤 역할을 주로 담당했었고?
◆ 하태경> 이게 민혁당 서열로 보면 쉽게 중앙위원회가 있고요. 그 밑에 지역위원회가 있습니다. 지역위원회는 수도권위원회, 영남위원회, 호남위원회 이렇게 있는데. 중앙위원이 3명이고요. 이석기 의원이 수도권을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규모로는 영남위원회가 컸고요. 그다음에 수도권이기 때문에 한 서열 5위 정도 됩니다.
◇ 정관용> 중앙위원 바로 밑에?
◆ 하태경> 중앙위원 3인 그다음에 영남위원회 그다음에 수도권위원회해서 서열 5위 정도.
◇ 정관용> 중앙위원 3인 가운데 김영환 씨 같은 분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 하태경> 그렇죠.
◇ 정관용> 그런데 그분들은 다 지금 전향한 상태인가요?
◆ 하태경> 그 3인 중에 김영환 씨는 전환을 했고. 나머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한 분도 사실상 전향을 했고 그냥 일상적인 삶을 살고 계시고요. 그리고 전향 안 한 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김영환 씨가 전향을 하고, 김영환 씨가 북한하고 연계가 있었거든요. 수령이었죠. 수령이었는데 북한하고 연계가 끊어질 것 아닙니까? 전향을 했으니까. 그래서 중앙위원회에 남아있던 하 모 씨가 북한하고 연계를 시도를 했죠. 자기가 민혁당 재건작업을 했습니다. 이때 아마 이석기 의원이 같이 했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이 재건작업은 결과가 어떻게 됐죠?
◆ 하태경> 이게 미스터리입니다. 그래서 원래 이석기보다 상급. 전향하지 않고 남아있었던 사람이 그 하 모 씨인데. 이번에 이석기 의원이 국회에 들어오고 나서 저희들의 관심은 하 모 씨가 지하에서 배후조정을 하느냐 안 하느냐. 하면 이석기는 2인자죠. 하지 않으면 이석기가 1인자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 정관용> 그럼 영남위원회 위원장도 전향했어요?
◆ 하태경> 4위, 5위, 6위는 영남위원회 지역위원회이기 때문에 서열로 보면 그건 사실상 수평적 관계입니다. 수직적 관계가 아니고. 그래서 영남위원회 위원장이 수도권위원장을 지도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닌 거죠. 그래서 그 하 모 씨밖에 없는데, 결국에는. 그래서 나중에 보니까 하 모 씨는 관계가 없다는 저희들이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예 일상 지역활동을 하지 않는다.
◇ 정관용>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죠? 행적을 좀 보니까?
◆ 하태경> 그래서 프로 아니겠습니까?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고, 주변 아는 인맥들이 있고. 그걸 종합해 보면 저희들이 볼 때는. 그런데 이석기 씨는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라는 판단을 저희들이 했었죠.
◇ 정관용> 그러면 민혁당 재건 관련이라고 만약 치면 지금 현재 하 의원이 파악하는 바로는 이석기가 1인자네요.
◆ 하태경> 1인자입니다. 배후가 없습니다.
◇ 정관용> 그렇게 보여진다?
◆ 하태경> 네.
◇ 정관용> 일각에서는 국회의원으로 공개신분으로 가고 그랬는데. 그걸 지도하는 지하 정당이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도 하고 그러시지 않으셨나요?
◆ 하태경> 지하 정당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요. 겸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영환 씨 같은 경우는 중앙위원장이기는 하지만 일부 지역의 조직을 직접 담당합니다. 직접 지도하기 때문에. 이석기는 RO조직의 책임자이기도 하면서 지하당에 있더라도 거기의 책임자다. 그런데 저희들이 볼 때는.
◇ 정관용> 그러면서도 또 신분을 공개화 시켜서?
◆ 하태경> 공개화 시키고.
◇ 정관용> 그렇게도 가능하다?
◆ 하태경> 그 부분은 저희들이 볼 때는 보통은 그렇게 안 합니다.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 인데. 왜 그랬을까 봤을 때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결정적 시기가 다가왔다, 혁명전야다. 그래서 내가 커밍아웃을 해야 된다. 혁명전야인데 지하에만 있으면 상황이 파악이 안 될 것 아닙니까? 이게 하나가 있고. 두 번째는 야권연대가 되기 때문에 권력에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원래 야권연대가 정책연대로 대선까지 가는 거였거든요. 계획이. 그러면 사실상 연립정부가 설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럼 장관 몇 자리를 받을 수 있고 청와대에 들어갈 수도 있고. 그러면 그 권력의 중심에 수령이 들어와야 전체 상황이 파악이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무모한 결단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 정관용> 그런데 이번에 내란음모 내지는 내란선동 혐의로 쭉 나타나고 있는 게 다 녹취록에 나오는 발언들이란 말이에요.
◆ 하태경> 네.
◇ 정관용> 이런 발언들 같은 걸 접하시고 처음에 어떤 느낌이었어요? 나도 옛날에 그런 얘기 많이 했었다는 분위기였습니까? 아니면.
◆ 하태경> 아닙니다. 처음에는 ‘이거, 사실이야? 국정원 오버하는 것 아니야?’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때도 폭동, 전쟁준비 이런 이야기를 이론적으로 했습니다. 관념적으로. 그런 얘기를 하지만 아주 극소수 두세 명 모여서 하는 이야기지 130명이 모여서 무기준비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라고 처음에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전모가 밝혀진 거는 체포동의 요구서가 오고 나서 다 읽어보니까 이 사람들의 정세인식이 전쟁이 임박했다, 결정적 시기다. 왜냐하면 준비기 때는 지하에 있다가요. 결정적인 시기 때는 다 밖으로 나와야 됩니다. 한국전쟁 때 남로당 의원들이 지하에 있다가 김일성이 쳐내려오니까 조응을 하기 위해서 다 공개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완장차고. 이런 시기가 다가왔다고 본 겁니다.
◇ 정관용> 우리는 다 공개해야 한다?
◆ 하태경> 그럴 시기가 머지않았다. 그러니까 다 모여.
◇ 정관용> 그게 지난 5월이었죠?
◆ 하태경> 5월인 거죠.
◇ 정관용> 북한에서 정전협정 무효다 이런 선언하고 막 그런 거.
◆ 하태경> 그렇죠. 핵공격 위협도 하고 그런 상황이었죠.
◇ 정관용> 그러니까 실제로 북한이 공격해서 전쟁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나보죠?
◆ 하태경> 그렇죠.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은 이해가 잘 안 되는데. 그걸 읽어보면 몇 달 안에 북한이 공격을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우리는 정말 준비를 안 하면 안 된다.
◆ 하태경> 그렇죠.
◇ 정관용> 그런 절박감을 가졌다는 거군요.
◆ 하태경> 절박한 거죠. 굉장히 조급한 거죠. 그러니까 모든 사람을 모아놓고 결의를 다지고 우리는 지금 북한이 공격할 것을 대비해서 폭동준비를 해야 돼. 이렇게 된 것입니다.
◇ 정관용> 그런데 지금 뭐 몇 개의 조로 나누어서 조별토의를 했다고 그러는데. 물론 이정희 의원의 해명에 의하면 지금 녹취가 된 1개 조에서만 그런 얘기가 나왔다라는 식으로 해명을 했어요. 나머지가 진짜 그런 얘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되지는 않습니다마는. 그런데 만약 지금 그런 절실한 정세인식하에서 철저준비 그런 단계라고 한다면 여러 조에서 다 똑같은 그런 얘기가 나와야 되는 것 아닌가요?
◆ 하태경> 거기에 보면 분임토론을 한 결과를 조장들이.
◇ 정관용 발표하죠.
◆ 하태경> 조장들이 발표를 하죠. 그리고 그 분임토의는 따로 했을 것 아닙니까? 다른 장소에서. 그래서 아마 분임토의 할 때 모든 분임토의장에서 다 녹음을 하기는 어렵죠. 그러니까 한 분임토의장에 녹음기 하나밖에 없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분임토의장에는 녹음이 됐을 것이고. 그다음에 조장하고 다 모였을 때 그건 또 녹음이 되어 있죠. 그러니까 이정희 대표가 한 분임토의만 녹음되어 있다고 한 게 녹음기가 여러 개 있었으면 다 녹음을 했을 텐데.
◇ 정관용> 그러니까 조장들의 발표 내용을 보면 역시 대동소이하다고 보시는 건가요?
◆ 하태경> 그렇죠. 조장들의 발표 내용도. 물론 이 사람들도 조금 약간 황당할 것 아닙니까? 갑자기 전쟁준비를 하자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들 중에도 준비가 많이 된 사람이 있고. 보면 3월달부터 지시를 합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를 시켜요. 그래서 미리 조사도 하고 폭탄 만드는 방법도 연구도 하고, 몇몇 사람들은. 그래서 종합을 하는 거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 저거 아닌데’ 하는 생각도 할 것 아닙니까? 내부에서는. 이런 게 막 섞여 있는 거죠.
◇ 정관용> 그런데 북하고 그렇게 만약 연계가 돼 있다면 정말 북한이 전쟁 일으킬 생각이 없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요? 지금 북한이 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화국면도 막 벌어지고.
◆ 하태경> 그러는 저는 북한이 이석기를 물 먹인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요.
◇ 정관용> 물 먹인 거다? (웃음)
◆ 하태경> 네. 그러니까 5월까지만 해도 북한 내부에서 전쟁할 수도 있다는 결의에 차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쪽에 신호를 전쟁한다는 쪽으로 준 것 같습니다. 그래놓고 6월달 넘어가면서 개성공단도 안 할 것처럼 했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북한 내부에서 격렬한 정책조정이 있었겠죠. 그래서 안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건데. 어쨌든 그 당시의 북한은 실제로 뭔가를 하려고 했습니다. 적어도 연평도 이상의 무엇을.
◇ 정관용> 무력적 도발, 국지적 도발은 있을 수 있다라고 하는 얘기들을 그 당시의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많이 했습니다. 사실.
◆ 하태경>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그런 국지적 도발이 벌어진다고 해서 지금 무슨 총을 만들고 폭탄을 만들어서 유류저장탱크를 공격하고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 하태경> 그러니까 이런 거죠. 만약 연평도 공격 이상 수도권 북부를 때리면 주민들이 사는데 한국이 보복공격을 안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 정관용> 네.
◆ 하태경>그럼 보복 공격을 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빨리 한국을 항복시켜야 되는데 그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을 혼란시키는 거죠.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때리려고 그러는데 여기저기 막 터지고 사람들 암살당하고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그렇죠, 좀 더 빨리 한국이 항복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인 겁니다.
◇ 정관용> 북이 이석기를 물 먹였다라고 아까 표현하셨는데. 아니, 북한 입장에서도 이런 조직이 또 많이 있나요?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만.
◆ 하태경> 제가 볼 때는 많이 약화됐고. 아마 북한과 연결된 가장 큰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북한과 연계된 가장 큰 조직이라고 치면 그걸 물 먹여서 이런 식으로 실패로 빠지게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 하태경> 북한이 하는 일이 원래 그런 게 많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하태경> 북한 나라가 왜 저 모양이겠습니까? 북한 내부에서도 수령이 하나 지시를 합니다. 수령이 지시를 해 놓고 따라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수령이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저건 하면 안 되는데 지시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미 했어요. 그러고 나서 마음이 바뀌어서 ‘너, 그거 왜 했어?’ 이러면 그것도 처벌을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석기는 위에서 무슨 시그널이 오더라도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이건 바뀔 수 있다’. 원래 우리도 회사도, 재벌도 그렇지 않습니까? 회장이 뭘 지시를 하면 밑에서 ‘아, 지금 회장이 너무 업되어 있다. 저건 나중에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러면 복지부동한다든지. 공무원들이 잘 하잖아요.
◇ 정관용> 그래야 되는데 그런데 너무 막 앞서나갔다?
◆ 하태경> 충성도가 굉장히 높은 겁니다. 이석기는 충성도가 높은 겁니다. 북한이 까라면 무조건 까는 거죠.
◇ 정관용> 그런데 거듭 통합진보당 측에서는 이건 왜곡날조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또 이정희 대표 오늘 나온 걸로 봐서는 몇 몇 사람들이 농담조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까?
◆ 하태경> 그러니까 둘 중의 하나 아니겠습니까? 시인하든지 안 하든지. 그런데 시인 쪽은 도저히 안 되는 거죠. 그리고 이 시인이 되면 다 잡혀 들어가고. 끝까지 부인해야 법정투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부인하는 쪽으로 하는 데 말이 되게 부인을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게 녹음기는 거짓말을 안 하잖아요. 다 나와 있으니까 지금 아무리 변명을 해도 오히려 저쪽의 진실성만 의심받는 이런 상황이 된 것입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하 의원의 과거활동, 경력, 경험 또 지금 새롭게 그쪽 김영환 씨나 이런 분들하고 만나서 이야기한 그런 경험 등등에 비추어볼 때 정세판단을 그렇게 했다면 충분히 그런 얘기들을 했을 것이다라고 보는 거예요?
◆ 하태경> 그렇죠. 지금이 혁명전야인데요. 전쟁전야인데요. 지금 다 봉기를 할 준비를 해야죠.
◇ 정관용> 맨 처음에 이 사건보도를 접하고는 ‘국정원 무리하는 거 아냐’ 이렇게 생각했다고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 하태경>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 정관용> 특히 국정원이 지금 개혁요구에 지금 봉착해 있는 이런 시점이기 때문에.
◆ 하태경> 그것도 플러스가 돼 있었죠. 지금 국정원이 어려우니까 이거를 물 타기 해 보려고 좀 과대한 조작 이런 가능성이 있는 그런 걸 만드는 게 아니냐 의심을 순간적으로 했어요.
◇ 정관용> 그런데 금방 그건 풀렸습니까?
◆ 하태경> 왜냐하면 너무 큰 사건이니까. 너무 큰 사건이고 만약에 국정원이 자기 난처한 걸 덮으려고 했으면 국정조사 일어나기 전에 하죠. 한 달 전에. 그때도 충분히 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 증거가 다나왔기 때문에.
◇ 정관용> 5월과 국정조사 사이?
◆ 하태경> 그렇죠. 7월 정도에.
◇ 정관용> 모르죠. 그런데 제보자한테 받은 게 늦게 받았을 수도 있죠. 사실.
◆ 하태경> 그런데 거기해서 다 사진도 찍고 했다지 않습니까? 5월달에. 그때 확보가 됐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오히려 국정조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정치적으로 의심을 덜 받는.
◇ 정관용> 그럼 이건 개혁에 저항하는 건 아니다라고 보세요?
◆ 하태경> 제가 볼 때는 그러면 나중에 재판하면 저는 뚜렷이 나타날 거라고 보는데. 그 재판을 성공적으로 이끌면 개혁에 저항했다는 이런 건 없어 질 것입니다. 그런데 재판이 뭔가 부실한 게 많고 무리수가 있다면 좀 지켜봐야 되겠습니다. 아직은 어쨌든 녹음파일들이 충분히 있다.
◇ 정관용> 수사과정 또 공소유지에 자신감이 있을 정도로 제대로 됐는지 아니면 지금 무리하고 앞질러 갔는지.
◆ 하태경> 지금까지는 당장 판사가, 판사 체포동의서를 내 준거거든요. 판사가 동의하는 거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런 과정을 다 지켜보고 국정원에 손대는 부분은 차근차근 논의하자 이런 입장이신 거죠?
◆ 하태경> 네.
◇ 정관용>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으로부터 우리는 잘 몰랐던 옛날 얘기부터 시작해서 조금 이해에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어쨌든 하태경 의원의 주장이고요. 나중에 어떻게 또 판별 날지를 더 함께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 하태경> 네, 알겠습니다.
◇ 정관용>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 하태경>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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