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사전구속영장에 따르면 이 의원은 RO(Revolution organization 일명 산악회) 조직원들의 국회의원 당선을 “교두보의 확보”라고 표현했다.
이 의원은 또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해 정치적 합법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혁명의 진출”이라고 봤다.
◈ '종북=진보' 착시 유발, 진보정치 전체에 부담
이 의원은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다. 이른바 ‘종북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착시가 발생한다. 종북의 혐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 명칭에서 보듯 ‘진보’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종북=진보”라는 착시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통합진보당은 강령에서 “우리나라와 세계진보운동의 이상과 역사적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다양한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는 새로운 대안사회를 지향하는 진보정당”이라고 진보를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강령에서는 “한반도 비핵 평화체제를 실현한다“고 명시했으나 이석기 의원은 지난 5월 12일 모임에서 ”북은 핵보유 강국이 됐다“고 말하는 등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즉, 통합진보당은 겉으로는 진보를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주장을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종북=진보“ 프레임이 국내 진보정치 진영 전체를 종북으로 묶어버리면서 진보정치의 전진에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앞서 같은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전날 "국민들은 헌법 밖의 진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며 “이석기 의원은 수사에 당당히 임하라“고 촉구했다.
한 때 진보정당을 함께 했던 이들의 반응은 민주공화국을 부인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석기 의원 등의 혐의 때문에 진보진영 전체가 매도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 2001년부터 국회 등 합법적 정치공간 진출 모색
종북 문제를 둘러싼 진보진영 내의 갈등은 연원이 매우 길다.
지난해 9월 통합진보당 분당 때도 표면적인 계기는 이석기 의원의 비례대표 부정경선이었지만 종북문제를 둘러싼 당권파와 심상정 의원 등 탈당파의 견해 차이가 자리잡고 있었다.
따라서 당권파 뿐 아니라 심상정 노회찬 등 탈당파, 유시민 등 국민참여당 계열까지 화학적인 결합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통합진보당의 이름으로 뭉친 것은 지난해 총선 승리를 위해 종북문제를 잠시 유보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같은 이합집산은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시절, 이른바 ‘일심회’ 사건이 불거졌던 지난 2008년에도 있었다.
일심회 사건은 당시 총책이었던 장민호 등이 각종 국내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보고한 사건으로 당시 민주노동당 최기영 사무부총장은 주요 현안에 대한 당 내 계파별 성향과 동향을 분석한 자료를 북한 공작원에게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민주노동당은 지난 2008년 2월 임시 당대회를 열고 혁신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당 내 다수를 점하고 있는 당권파에 의해 부결됐고 일심회 제명처분안도 폐기됐다.
결국 심상정 노회찬 등은 당권파를 종북주의자로 규정하고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하는 등 종북과 거리를 두었으나 통합진보당으로 다시 모이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민족해방(NL) 계열 인사 700여명은 지난 2001년 9월 충북 괴산군 칠성면 군자산 보람연수원에서 이른바 ‘군자산 약속’이라고 불리는 활동가 모임을 열었다.
이들은 이 모임에서 “3년 안에 광범위한 대중 조직화를 통해 ‘민족민주정당’을 건설하고 10년 내에 ‘자주적 민주정부 및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겠다”고 결의했다.
이들은 지난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에 대거 입당하며 지역·직능별로 당을 장악해 2004년 무렵에는 당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0석을 확보하는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
이석기 의원이 주장했다는 통합진보당 당권 장악을 통한 정치적 합법공간 확보가 최소한 10여년 이상 기획된 전술이라는 뜻이다.
◈ 선거 승리 위해 통합진보당과 손잡고 야권연대
통합진보당의 합법공간 진출 성공에는 제1야당인 민주당이 지난해 4·11총선을 앞두고 야권 승리를 위해 야권연대를 했다는 점에서도 비판의 소지가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오늘의 사태에는 제 발로 서지 못하고 연대와 단일화에만 목 맨 민주당에도 책임이 있다”며 자성론을 제기했다.
때문에 이처럼 진보를 가장한 종북주의자들의 발목잡기에 대해 이제는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용인대 최창렬 교수는 “통합진보당의 종북 성향이 그동안 진보인 양 혼재돼왔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리논쟁과는 별도로 민주당과 정의당이 확실히 선을 긋는 등 진보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새누리당과 민주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오는 4일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의원 체포동의안은 '본회의 보고 뒤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라는 국회법 처리 규정에 따라 3일 오후부터 5일 오후까지 표결 처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