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로거장 봉만대 감독 "내 안에 B급 에로유전자 있다"

사람 사랑 삶 있는 감성 에로신 선보여…"연인 손잡고 에로영화 보러 극장 가는 그날까지"

사진=이명진 기자
에로 거장. 최근 에로 영화 촬영장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린 '아티스트 봉만대'를 들고 돌아온 봉만대(43) 감독에게 후광처럼 따라붙는 수식어다.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2003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2012년)' 등으로 기존에 볼 수 없던 감성 에로신을 선보여 온 덕에 얻은 명예다.
 
이를 두고 '흥밋거리 식 별칭이잖아'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봉 감독은 "에로 거장이라고 처음 불러 준 분은 거장 임권택 감독님"이라고 전했다.
 
"영화 '천년학'(2006년)을 찍으실 때 임 감독님을 뵀는데 '에로 거장, 그 길로 계속 가라'고 하셨죠. 감독님께서는 촬영장 숙소에서 쉬실 때 항상 영화를 보시는데 하루는 TV에서 방영하는 제 영화를 끝까지 흥미롭게 보셨다고 해요. 큰 힘이 됐죠. 고등학교 시절 연극대회에서 상을 탔을 때 무뚝뚝한 담임 선생님이 등 뒤에서 어깨를 툭툭 치고 갔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죠. 칭찬에 인색한 시대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다양하고 건강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이지 않나 싶어요."

-자기 이름을 내건 영화에서 주연까지 맡았는데.
 
"대본 없이 주어진 상황만 갖고 애드리브로 만들어 가자는 것이 기획 의도였다. 본인 이름 그대로 나오는 배우들의 실제 성격도 많이 반영됐을 것이다. 나 역시 에로 영화 감독으로 출연하면서 '내 모습이 이랬구나'라고 되돌아볼 수 있었다. 스스로는 배우들에게 부드럽게 한다고 했던 상황도 그들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가더라. 감독은 배우들을 이해하면 안된다. 어설픈 독재가 아니라 분명한 독재가 필요하다. (웃음) 에로 영화는 흔히 설득의 과정이 없다고들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현장 자체가 설득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술가로서 봉만대의 관점이 강화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셈이다."

-데뷔 이래 요즘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듯하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이후 10년 만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재미가 다른 에로 영화 현장에 대한 이야기가 불편하지는 않았나 보다. 우리네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이야기니까. 제작자와 감독, 투자자와 제작자처럼 물고 물리는 갑, 을의 관계 속에서 충돌과 불통이 있고, 주류로 가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영화계 입성 과정은.
 
"나이 서른 전에 영화 감독이 되겠다고 어머니와 약속을 했었는데, 어머니는 '서로 먹고 살기 힘든 형편에 고향 광주로 내려와서 가게 일을 도우라'는 입장이셨다. 스물아홉 살 때 한일 합작 핑크무비로 데뷔해 지금에 이르렀다. 기회가 좋았다. 영화계 도제 시스템 안에서 배웠는데,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현장에서 두들겨 맞으면서 몸으로 익혔던 경험이 큰 재산이 됐다."


-에로 영화계의 특징을 꼽는다면.
 
"단거리 경기와 비슷하다. 복잡한 생각 없이 창작자가 바로 움직일 수 있다. '이 배우가 필요하다' 싶으면 생각에 머물지 않고 바로 움직인다. 이와 달리 상업 영화는 계획을 잡고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마라톤이다. 방식이 다른 것이다. 젋은 때는 단거리가 좋았다. (웃음) 영화 감독들은 어떤 아이템이 생기면 긴 시간을 싸우기 마련이다. 그 과정을 거쳐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동안 자신이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피로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렇게 몸부림치는 세월이 있다."

-신세경 주연의 공포 영화 '신데렐라'(2006년)도 찍었다.
 
"내가 만든 영화에 출연한 배우, 스텝은 A급일지 몰라도 내 감성은 언제나 B급이다. 그래서 에로든 호러든 내가 만들면 B급 영화가 된다. 블록버스터를 만들더라도 나는 그 안에 에로신을 넣어야 한다. B급에 대한 보다 정확한 개념 규정이 필요한 때다. 모두가 A급으로 가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다양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소수에 관심을 갖는다는 말과도 통한다. 그 안에서 B급 장르도 힘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이명진 기자
-B급 감성의 원천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내 안에는 에로 유전자가 있다. 분석하고 정리하지 않아도 내가 타고난 감성이 그렇다. 모든 상황에 봉만대를 대입시키는 것이다. 사랑이 좋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동물적인 섹스와 번식에 대한 태도도 좋고, 사람들이 그것을 누리는 것도 좋다. 나는 무언가 '지향'하는 것을 '지양'한다. 내가 잘하는 것을 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에로다."

-봉만대에게 에로란.
 
"사람 이야기, 사랑 이야기. 그것이 에로의 핵심이다. 에로는 가공되고 포장된 사랑보다 더 솔직하다. 건조하고 메마른 섹스는 안된다. 사랑이 있어야 한다. 길을 가다가 젊은이들이 뽀뽀하는 모습을 보면 '에로의 봄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 풍경을 카메라 앵글에 담을 때는 앞뒤가 필요하다. 그들의 건강함을 제대로 표현한다면 벗었을 때도 당당할 수 있다. 사건과 이야기 없이 벗는 것은 누추하고 창피한 일이다. 한 세대만 더 지나면 건강한 에로 문화가 만들어질 것으로 본다."

-성을 삶의 원동력으로 본 프로이트가 떠오른다.

"친구 중에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그는 교육적 태도에서, 나는 삶의 경험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 친구를 통해 프로이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나는 꿈을 기록한다. 이를 1년 뒤에 보면 대단한 세계가 펼쳐진다. '나를 꿈꾸는 나' '나를 지켜보는 나'처럼 무수히 많은 내가 있다. 바른 생활, 바른 교육 등에 대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 때 생물책을 보면서 '무생물'이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오는 식이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일을 하시고 형제들과도 터울이 많아 어릴 적 혼자 생활할 때가 많았다. 그때 나만의 세계가 확실하게 만들어진 듯하다."

-나이가 더해지면서 그 세계도 달라졌을 텐데.
 
"결혼을 해 가족을 꾸리면서, 영화적 동지들이 생기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생겼다. 여전히 좋은 책을 접하면 세상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은 변함없다. 이제는 내 인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가족의 격려나 질책은.
 
"여덟 살짜리 아들이 '아빠 아티스트네'라고 하더라. 인정 받았다, 하하. 아내는 '니가 나가서 감독이지 집에서도 감독이냐'고 한다. (웃음) 한계를 넘어서려 애쓰는 과정을 보면서 격려하는 것이다. 5년 전 돌아가신 장인어른은 멘토셨다. 늘 '봉 감독'이라고 부르셨는데, 2005년엔가 하루는 '요즘 청계천에서 제일 잘 나가는 영화'라며 CD 한 장을 주시더라. 봤더니 내 작품이었다. 영화를 좋아하시던 그분은 '당신을 원하는 시대가 온다'고 격려하셨었다."

-에로 영화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데.
 
"B급을 삼류 저질 문화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굳이 설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나서서 말로 떠들기 보다는 작품으로 보여 주고, 고민할 여지를 만들어 준다면 서서히 바뀔 것이다. 영화 감독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B급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스스로 두려워하던 것을 깨고 자신 있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B급 에로를 즐겼으면 한다."

-에로 영화가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영화를 찍으면서 제작자들과 가장 크게 싸우는 부분이기도 하다. 스토리가 있고 캐릭터가 있는 에로 영화는 포르노가 아니다. 내 안의 감성을 끌어내 콘텐츠로 만든 것이다. 아직도 남성 위주의 극장가에서 여성을 위한 영화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현대사에서 여성을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상품화하는 과정도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남성에 뒤지지 않는 여성이 늘어난 요즘 그들도 마음만 먹으면 극장에 올 수 있다. 여성들이 에로 영화를 오락으로 생각하고 남자친구와 극장을 찾았으면 한다. 여성들이 보고 낄낄대고 논할 수 있는 영화가 아티스트 봉만대이기를 바란다. 남성의 생식 본능에 기댄 에로 영화에는 한계가 있다. 여성들이 그러한 남성들을 골방에서 끌어내 극장으로 데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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