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풀꽃나무이야기-곰취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

제주CBS '브라보 마이 제주'<월-금 오후 5시 5분부터 6시,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에서는 매주 목요일 제주의 식물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곰취'에 대해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를 통해 알아본다.

곰취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

오늘 오전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잠깐 내린 것이지만 너무나 오랜 시간 기다린 단비였습니다. 올 여름처럼 제주에 지독한 무더위와 가뭄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계속된 열대야로 모두가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날이 많았고 장마기간인데도 오히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연못은 바닥을 드러냈고 그 자리를 차지했던 수생식물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기어이 꽃을 피우려는 식물들도 있지만 예년과 다른 생육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식물들인데 맨 땅과 같은 곳에서 꽃을 피우려니 오죽하겠습니까. 이 시기에 숲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들도 개체수가 훨씬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꽃차례도 작년만큼 풍성하지 못합니다. 지난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올해 같은 여름이 될까 걱정입니다.
 

이맘때 한라산을 오르다 보면 노란 꽃을 피운 곰취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봄철 싹이 올라오는 것부터 계속 봐온 터라 다른 꽃들에 비해 사람들의 시선은 끌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곰취를 빼놓고 여름 꽃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곰취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꽃으로 해발 200m 이상의 습기가 있는 그늘에서 잘 자랍니다. 제주에서는 3월이면 잎이 올라오고 7월이면 꽃이 피기 시작하여 9월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키는 다 자라면 어른의 허벅지까지 크고 꽃대는 곧게 섭니다. 꽃대 하나에 수십 송이의 노란 꽃들이 달리는데 꽃차례가 비교적 크기 때문에 멀리서도 곰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꽃 하나하나는 꽃잎처럼 보이는 설상화와 가운데의 수많은 관상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곰취는 꽃보다 잎이 더 유명한 듯합니다. 그것은 잎을 나물로 식용할 수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예전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오름을 오를 때면 곰취 잎 몇 장을 따서 쌈으로 점심 한 끼를 뚝딱 해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느꼈던 알싸하고 향긋한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잎은 넓은 심장 모양을 하고 있고 가장자리에는 규칙적인 톱니가 있습니다. 3월이면 뿌리에서 잎이 올라오고 줄기에도 3장의 잎이 달립니다. 9월이 되면 결실을 하는데 씨앗에 붙어있는 털(관모)은 바람을 타고 먼 곳으로 날아갈 수 있는 날개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정착을 하고 봄이 되면 싹을 틔워 다시 새로운 개체로 자랄 것입니다.
 
곰취 (촬영: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

곰취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잎의 모양이 곰 발바닥처럼 생겼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하고 곰이 나타나는 깊은 산속에 자라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밖에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이 가장 먼저 찾는 나물이라 해서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잎이 말발굽과 비슷하다 하여 마제엽(馬蹄葉)이라 하기도 하고 곰달래, 왕곰취, 곤대슬이 등 지역마다 달리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곰취의 학명 Ligularia fischeri의 속명 Ligularia는 '설상화가 혀를 닮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종소명 fischeri는 러시아의 분류학자 피스체리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습니다.
 

곰취는 '산나물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나물로 유명합니다. 금방 딴 것을 쌈으로 싸먹어도 입안의 향기가 오래 남아 맛을 즐길 수 있고 잎이 조금 억센 것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쌈으로 먹거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일품입니다. 잎은 삶아도 향기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물기만 제거하여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먹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잎을 간장이나 된장에 담가 장아찌로 먹기도 합니다. 예전 정월 대보름날에는 복쌈이라 해서 김과 곰취 잎에 밥을 싸서 먹는 풍습도 전해집니다. 19세기말에 만들어진 '시의전서(是議全書)라는 요리책에도 곰취쌈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곰취를 식용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곰취가 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고 항염 및 지혈작용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약재로도 인기기 높습니다. 한방에서는 뿌리나 잎을 이용하는데 기침과 천식의 가래를 가라앉히는 데도 효과가 좋다고 하고 허리와 다리의 통증을 없애는 데도 그만이라고 합니다. 이 밖에 간염, 황달, 고혈압 등을 치료하는데도 많이 쓰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더욱이 식이섬유 및 각종 비타민 성분, 무기질도 풍부한 편이기 때문에 만성피로를 푸는데도 제격이라고 합니다. 먹거리로서, 약재로서의 인기를 반영하듯 최근 강원도 양구군에서는 곰취를 주제로 하는 웰빙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곰취가 여러 가지로 쓰임이 많아서인지 꽃말이 '보물'입니다. 
 

곰취는 가을의 문을 가장 먼저 두드리는 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들꽃을 따라다니다 보면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만큼 일 년이 빠르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들꽃은 사람들을 자연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들꽃이 주는 은은한 아름다움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곰취가 피었으니 가을이 바로 코앞에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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