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인증을 빨리 받아야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고 외국 기업과도 경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증을 빨리 해달라고 민원이 끊임없이 들어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력이 부족하다고 손놓고 볼 수 만은 없지 않습니까?"
산업기술시험원(KTL) 남궁민 원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산하 공공기관인 산업기술시험원은 지난해 경영실적을 평가하는 공공기관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 바로 위인 D등급을 받았다.
자체수입이 지난해 1백억원 가까이 늘어나 재정자립도가 94%까지 올라가 거의 정부 예산에 기대지 않게 됐고, 시험인증 처리실적도 29%나 상승하는 등 전반적인 경영실적은 좋았다.
문제는 비정규직을 많이 채용(65명)하는 바람에 직원 평균 생산성이 낮아져, 기여도 항목에서 점수가 크게 떨어졌다. 산업기술시험원이 비정규직을 제외하고 자체적으로 평가기준을 적용해 채점한 결과로는 B등급이 나왔다.
남궁 원장은 "시험인증 요청은 쏟아지는데 기획재정부가 정원을 늘려주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며 "정규직 채용을 못하니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었고 방만경영은 하지도 않았다"고 항변했다. 정원이 묶인 상태에서 그나마 비정규직을 활용해 좋은 실적을 냈는데 왜 감점이 되느냐는 것이다.
또, 평가편람에는 정규직인 '연구원'만을 평가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비정규직까지 모두 포함해 평가한 것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평가 주관부처인 기재부는 각각 특성이 다른 공공기관들을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 하다보니 일부 문제점이 발생할 수는 있다고 인정했다.
기재부 김태주 공공정책국장은 "산업기술시험원의 경우 민간기업의 특성이 강해 장차 민영화를 통해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는 곳"이라며, "일률적인 기준을 만들어서 적용하다보니 일부 불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그러나 "다른 공공기관들도 다 똑같은 잣대로 평가를 받고 있고, 개별 공공기관들의 사정을 다 들어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산업기술시험원의 이의제기에 대해 꼼꼼히 답변서를 준비 중"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산업기술시험원 측은 '잘못을 고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기관의 명예가 회복될때까지 불복 절차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시험원은 앞서 지난달 기획재정부에 이의를 제기하는 공문을 보냈고, 이달 초순에는 청와대에 탄원서를 냈다. 시험원은 또 감사원 감사청구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번 공공기관평가는 수자원공사의 경우 4대강 사업을 평가항목에서 제외해 B등급을 부여하는 등의 문제로 공공기관 사이에 뒷 말이 많았다. 또 공공기관 평가항목에서 비사업지표 비중이 높아 오히려 고유업무의 충실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산업기술시험원이 '끝장 투쟁'을 선포한 가운데, 그동안 불만을 억눌러 왔던 다른 공공기관들도 동조하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불복 사태의 파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