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가 각본, 연출도 모자라 주연배우 자리까지 꿰찼다. 에로영화 촬영장의 은밀하고도 치열한 풍경을 오롯이 담아낸 영화 '아티스트 봉만대'에서다.
웬만한 거장들도 자기 이름을 영화 전면에 내세우기는 꺼린다던데, 봉 감독이 이름 앞에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까지 붙여가며 용기를 낸 까닭은 무엇일까?
이곳은 천혜의 자연을 품은 휴양지 인도네시아 발리. '남극일기(2005년)' '헨젤과 그레텔(2007년)' 등을 연출한 임필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곽현화 성은 이파니가 주연을 맡은 에로 공포영화 '해변의 광기' 올 로케 촬영이 한창이다.
그런데 에로신이 심심해도 너무 심심하다며 타박하는 제작자 탓에 감독의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 사사건건 부딪치던 둘은 결국 제작자가 "고칼로리 에로신이 절실하다"며 에로 거장 봉만대 감독을 긴급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등을 돌린다.
한국으로 날아와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제작자에게 봉 감독이 대뜸 묻는다. "이거 메이저야?" 제작자가 돌아간 뒤 가족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하는 봉 감독. "3개월은 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하하!"
하지만 촬영장에 갑작스레 등장한 봉 감독과 그를 경계하는 배우, 스탭들이 끊임없이 마찰을 빚으면서 영화는 산으로 가기 일보직전에 이른다.
이번 영화를 통해 이미지 변신을 꾀하려는 여배우들의 반발이 특히 거세다. 각기 개그우먼, 에로배우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은 곽현화와 성은은 "내가 지금 에로영화 찍으러 왔냐"며 봉 감독과 팽팽하게 맞선다.
돈맛 아는 제작자는 시도 때도 없이 "노출 수위를 더 끌어올리라"고 요구하고, 뒷방으로 밀려난 뒤 복수의 칼날을 가는 임필성 감독까지 가세하면서 촬영장의 혼란은 극으로 치닫는다.
봉 감독은 자신의 에로 세계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제작자와 배우, 스탭들이 야속할 따름이다.
배우들이 본래 이름과 현실에서 처한 입장 그대로 출연하는데다, 봉 감독이 "영화계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겪은 모든 경험을 담은 순도 99%의 진짜 이야기"라고 보증하는 만큼 이 영화는 지극히 사실적이다.
극중 감독과 배우를 비롯해 제작자, 스탭들은 각자의 절절한 이유를 갖고 현장에 몰입한다. 에로신 촬영장이라는 커다란 냄비 안에서 성공, 부와 같은 세상의 온갖 욕망과 감정이 들끓고 있는 셈이다.
봉 감독의 임무는 그 냄비 안에 든 것들을 잘 버무려서 맛깔나는 요리로 내놓는 것이다. 맨살들이 드러나고 맞닿는 에로신 촬영장에서는 그 끓는점이 지극히 낮은 만큼 힘이 배로 들 터다.
사전에서는 에로영화를 '성적인 욕망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내용의 영화'라고 설명한다. 주로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만족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에로영화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티스트 봉만대를 본 여성 관객들의 평가도 그리 후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소위 삼류 B급으로 치부되는 에로영화를 찍으면서도 이를 일류 A급으로 상승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금권만능 세상의 질서야 어떻든 소신껏 영화 그 자체를 완성하는 데 몰입하는 극중 인물들의 자세는 여느 아티스트와 다름없다.
"니들이 에로를 알아!" 극중 에로 영화를 우습게 여기는 세상을 꾸짖던 봉만대 감독의 카랑카랑 야무진 목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을 맴도는 듯하다.
29일 개봉, 상영 시간 102분, 청소년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