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가 출범한 뒤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 '형님'들과 기량을 겨룰 수 있는 무대가 사라졌다. 하지만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한 프로-아마농구 최강전이 새로운 기회의 장이 마련됐다.
서장훈이 등장한 지 20년이 지나 대학 무대에 새로운 거물이 등장했다. 프로-아마 최강전이 없었다면 아마도 확인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가 얼마나 위력적인 선수인가를 말이다.
고려대 13학번 이종현(19·206cm)이 서장훈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이종현은 요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 필리핀에서 막을 내린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남자농구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로 인정받았다. 프로-아마 최강전에서는 고려대가 고양 오리온스와 부산 KT를 완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1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울산 모비스와의 8강전에서는 프로농구 챔피언을 공포에 몰아넣을만큼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2쿼터 중반, 이종현은 대표팀 시절 동료였던 양동근의 레이업을 블록했다. 이어지는 수비에서는 높이에서 함지훈을 압도했다. 공중에서 공을 톡톡 건드리다 리바운드를 따내자 관중석에서 '오오~'하는 탄성과 함께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졌다.
이종현은 200cm 장신이 한명도 없는 모비스를 상대로 자비없는 제공권 장악력을 뽐냈다. 이종현이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낼 때마다 관중들은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2쿼터 종료 3분18초를 남겨두고 4학년 가드 박재현의 패스를 받은 이종현이 앨리웁 덩크를 터뜨리자 경기장은 마치 록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엄창난 열기로 가득 찼다.
이종현은 전반 20분동안 무려 20점 13리바운드를 올렸다. 야투 8개를 던져 단 1개의 실수도 없이 모두 적중시켰고 공격리바운드도 5개나 잡아냈다.
고려대가 2점차로 근소하게 앞선 4쿼터 막판, 모비스 양동근이 자유투를 던지기 위해 준비할 때 갑자기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양동근을 향한 야유는 분명 아니었다. 팬심은 고려대의 승리를 바라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새로운 스타의 등장이 누구보다 반가운 농구 팬들이다.
이종현은 후반 들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팬들의 바람을 외면하지 않았다. 고려대가 71-69로 앞선 종료 1분22초 전 시간에 쫓겨 던진 중거리슛이 깨끗하게 림을 통과했다.
이종현은 프로농구 챔피언을 상대로 무려 27점 21리바운드를 올리는 발군의 활약을 펼쳤다.
고려대는 이종현의 압도적인 골밑 장악에 힘입어 모비스를 73-72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실업 선배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제공권 장악력을 자랑하며 새로운 농구 판도의 도래를 알렸던 20년 전의 서장훈을 연상케 하는 대활약이었다.
이종현과 고려대를 연호한 농구 팬들은 20년 전 서장훈을 보면서 남자농구의 미래를 기대했던 것과 같은 마음을 안고 기분좋게 코트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