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숙 원광대 사학과 교수는 22∼23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관동대지진과 조선인학살사건'을 주제로 열리는 한·일 학술회의에 앞서 배포한 발표문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의 수는 기존에 알려진 것의 3.4배에 해당하는 총 2만 3천 58명이었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에서 제공하는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Ⅲ): 독일 외무성 편(2)' 속에 들어 있는 'MASSACRE OF KOREANS IN JAPAN < The List of killed bodies and places>'라는 제목의 사료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일 양국에서는 관동대지진 당시 피학살 조선인 수는 6천 661명이라는 것이 거의 공식화돼 있었다.
독일 외무성이 1924년 3월 작성한 이 영문 사료는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참혹하게 학살당했다는 내용을 담은 본문 8매, 학살 증거 첨부 문서 3매로 구성돼 있다.
첨부 문서를 보면 △학살 장소와 시신이 모두 확인된 조선인 피해자는 총 8천 271명 △장소 미확인·시신 확인 피해자는 7천 861명 △장소 미확인·시신 미확인 3천 249명 △경찰에 학살된 피해자 577명 △일본기병(군인)에 학살된 피해자 3천 100명이었다.
이 가운데 학살 장소와 시신이 모두 확인된 피해자만 8천 271명에 달하는데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전체 학살 규모 6천 661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문서 마지막 부분에는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한 한국인이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돼 있다.
강 교수는 "이 사료는 종래 학계에서 참고로 한 사료의 날짜보다 4개월 후에 작성된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나온 관련 사료 중에 최종적인 조사 결과물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일본 군·경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 기록된 조선인 1만 4천 747명은 당시 일본 최고의 지식인으로 존경받던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가 확인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관동대지진은 1923년 9월 도쿄를 비롯한 관동지방에서 발생해 10여만 명 이상이 사망한 최악의 지진이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조작되고 일본 사회의 내부 불만이 조선인에게 향하면서 일본 각지에서 재일동포가 군경과 주민에 의해 대량 학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