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으로 배고픔을 달래고 오후 일과를 위한 재충전과 휴식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런 점심시간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11시에 먹었다가 3시에 먹기도 하는 들쑥날쑥 점심 시간
헤어디자이너의 보조일을 하는 미용실 스텝 21살 김 모 군의 근무시간은 하루 12시간.
오전 10시. 영업이 시작되면 그때부터 손님맞이, 머리 감기기, 염색약 섞기 등 갖은 잡무를 도맡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주말엔 오후 3~4시에만 밥을 먹어도 운이 좋은 편이다. 이런 이유로 비가 오는 날이 좋다. 비가 오면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점심시간도 들쑥날쑥. 손님이 없는 날은 오전 11시에도 점심을 먹다가 손님이 많은 날은 오후 3~4시, 늦게는 퇴근 때 까지 못 먹는 경우도 있다.
밥 먹는 공간도 마땅치 않다. 2평 규모의 성인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휴게실에 나무 판 하나가 벽에 붙어 있다.
2명 정도만 들어가 벽을 보고 밥을 먹고 나오면 또 다른 스텝과 디자이너들이 들어가 밥을 먹어야 한다. 머릿속으로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김 씨가 밥을 먹으며 위안 받는 건 식후 입에 물게 될 담배다.
◈한평 부스 떠날 수 없어…사람들 시선 부끄럽지만 도시락으로 끼니 해결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주차관리원 일을 하는 박 모(48) 씨는 30도 중반을 웃도는 무더위에 작은 부스 안에서 탁상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며 근무를 하고 있다.
하루 10시간 근무에 점심시간은 따로 없다. 틈틈이 배를 채워야 하지만 오히려 점심시간에 식당가 주변으로 차들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이 더 많다.
조금 한산해지면 그때는 미리 싸온 도시락을 꺼내 먹기 시작한다. 반찬은 김치와 김 정도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밥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워 전단지 등으로 도시락을 가려서 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부끄러움은 없다.
점심시간만이라도 시원한 곳에서 남들 눈치 안보며 밥을 먹고 싶지만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기 때문에 도시락으로 배를 채워야 한다.
8년 동안 한 대학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는 임 모(35) 씨에게도 점심시간은 한자 그대로 점 찍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간호사들에게 점심시간이 따로 부여되지 않은데다 마땅히 교대해 줄 대체인력이 없기 때문에 다른 간호사가 환자들을 봐 줄 동안 10여 분만에 쏜살같이 먹고 와야 한다.
“우리는 밥을 먹는다고 안해요. 마신다고 표현하죠. 20분 정도 쉬면 잘 쉬었다라고 말하죠”
갑자기 위급 환자가 생기거나 업무가 많을 땐 점심마저도 거르게 된다. 오전 근무 조일 경우 새벽에 출근하기 때문에 아침은 당연히 챙겨먹지 못한다.
환자 상태에 따라 점심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럴 땐 환자가 준 빵이나 간식으로 배를 채운다.
하지만 마땅한 휴게 공간도 없어서 치료실 뒤나 탈의실 뒤편에서 몰래 숨어서 먹어야 한다.
◈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점심시간 1시간은 '꿈과 같은 얘기'
한국 노동사회연구소의 김종진 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서비스노동자의 노동시간과 점심시간 실태’에 따르면 병원 노동자들의 점심시간은 22분에 불과했다.
병원 노동자 가운데서도 간호사와 환자이송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의 점심시간은 18분으로 나타났다.
점심시간은 숨 돌릴 틈 없이 짧은 반면 이들의 1주일 동안의 노동 시간은 50여 시간에 이르렀다.
마트 등 유통업에 판매직 노동자의 1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50시간, 공공부문 청소 노동자 47시간, 병원 간호사 등 보건의료 노동자는 47시간으로 대부분 40시간을 훌쩍 넘겼다
서비스 업종은 제조업과 달리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고정적인 휴게시간을 갖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업에서 휴게시간을 보장해줄 만큼 여유인력을 마련하지 않는 점이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병원에는 평균 6~7명의 인력이 부족하고 유통은 2명 정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주어진 점심시간, 휴게시간마저 쪼개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점심시간은 기본적인 근로 조건이면서도 오후 일과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다”라며 “기업입장에서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점심시간을 유급화 하거나 교대 인력을 충분하게 마련하는 등의 방법으로 점심시간을 보장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