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개의 조명등이 대낮처럼 환하게 필드를 비추고 있었다.
여의도 면적의 절반이 넘는 이 골프장이 야간에 운영하는 코스는 모두 36홀. 빠짐없이 눈부시게 조명을 켜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필드 안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은 10명도 채 안됐다.
야간에 골프를 즐기는 소수를 위해 이 골프장은 지난 6월 11일부터 매주 화,수,목,금요일에는 빠짐없이 밤마다 불을 밝히고 있다.
비슷한 시각, 수도권의 또 다른 골프장도 야간 골프가 한창이다. 어두운 주위와 달리 골프장만 불야성을 이루고 있고, 골프는 자정이 넘어서까지도 이어졌다.
◈전력 위기라지만, 밤 밝히는 불 켜진 골프장
온국민이 전력소비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몇몇 골프애호가들을 위해 밤새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켜놓은 골프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전국적으로 야간 영업이 가능한 골프장은 100여 곳.
지난 2011년 고유가에 따른 에너지절약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내린 골프장의 야간 조명 금지 조치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면서 야간 영업에 뛰어드는 골프장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당시 재판부는 사용시간대가 하절기 전력수요 피크시간대가 아닌 점과 매출 감소 등의 이유를 들어 골프장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들 골프장에서 심야에 단 1시간만 조명을 꺼도 하루에 수 천만원 어치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골프장의 야간 영업이 전력예비율에는 큰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총량 에너지 절약에는 일정 부분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10명 즐기는데…축구장의 570배 전력소비 눈총
에너지시민연대 차정환 정책국장은 “야구와 축구의 경우, 각종 매체를 통해 대중과 함께할 수 있다는 부가가치가 있지만, 야간 골프는 몇몇 플레이어만 즐기는 스포츠”라며 “골프장의 1인당 전력소비량이 야간 경기를 하는 야구장의 390배, 축구장의 570배에 달하는 상황에서 굳이 소수를 위해 이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따져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골프장에 적용되는 전기요금의 단가는 일반 시민들이 내는 주택용 전기요금보다 싸다. 주택용 전기요금에는 누진제가 적용돼 많이 쓸수록 부담이 커지지만, 골프장이 쓰는 일반용 요금은 누진제와도 관계없다.
차 정책국장은 “골프장에 적용되는 전기료는 원가에도 미치지 않는 가격으로 원가보상률이 86%에 불과해 부족분을 보조하는 것은 바로 국민이 낸 세금”이라며 “국민이 낸 세금의 도움을 받고 있는 골프장이 전국민적 고통을 외면하고 야간영업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골프장경영협회 관계자는 “매출 감소에 따른 실직자 발생 우려와 타 스포츠와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받아들일 수 없다”며 “게다가 전력 사용 피크시간대와 무관하기 때문에 전력 수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국가적 위기 속에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고 있는 정부 역시 골프장의 심야 영업을 규제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법원이 골프장업계의 손을 들어준 상황에서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다”며 “가능하면 조명을 에너지효율이 높은 LED 등으로 교체해 줄 것을 요청하는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