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에 들어선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에어컨 가동은 중단된 채
선풍기 몇 대만이 열기를 쏟아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민원실을 찾은 한 60대 할아버지는 턱밑으로 줄줄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며 손부채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민원인 노모(63) 씨는 "등본 떼러 땡볕에 걸어왔는데 구청 안이 더 덥다"며 "한증막에서 고문당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 폭염으로 인명피해도 잇따라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인명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5시 8분쯤 경주시 노동동 봉황대 뒤편 잔디밭에서 쓰러져 있던 김 모(55)씨를 긴급 출동한 119구조대가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숨진 김 씨를 검진한 동국대 경주병원은 김 씨가 폭염으로 인한 일사병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질병관리본부에 관련 사실을 보고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6월부터 지난 11일까지 전국 436개 응급의료기관에서 보고한 온열질환자는 876명으로 이 중 8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되면서 각급 학교도 비상이 걸렸다.
경기도 성남여고는 13일 개학했으나 이날 단축수업을 한 뒤 14일과 16일 재량휴업 하기로 결정했다. 실질적인 2학기는 오는 19일 시작하는 셈이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성남여고 외에도 초등학교 4곳, 중학교 3곳, 고교 4곳 등 11개 학교가 2학기 개학을 연기했다.
대전·세종·충남지역에서도 대전 관저초등학교와 충남여중·괴정중·대청중·우송중학교 등 5곳은 오는 16일로 예정됐던 개학을 19일로 늦추기로 했다.
일부 고등학교의 경우 다음 주 수능원서 접수와 학사일정 등의 문제로 예정대로 개학을 하고 있지만, '찜통교실' 사태를 막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전시교육청 교수학습지원과 손문승 장학관은 "개학이후 가장 걱정되는 것은 학생들의 건강"이라며 "단축수업과 야외교육활동 자제 등을 각 학교에 당부했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는 모두 200여개 초중고가 폭염으로 개학을 연기하거나 단축수업 또는 휴교하기로 결정했다.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왕성한 녹조 번식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영산강 승촌보와 죽산보 주변에서는 녹조가 심해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몽탄대교 인근에서 처음 발견된 녹조가 최근 죽산보와 승촌보에서 발생했으며 전남 광주시 서창대교 인근에도 물이 녹색으로 변해 녹조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영산강 승촌보에는 길이 3백여m 너비 50여m의 진한 녹조띠가 발생했다.
전남 나주시 다시면 죽산보 하류에서도 심한 녹조띠가 발견됐으며 죽산보 인근의 지천에서도 녹조가 눈에 띄고 있다.
울산시는 폭염과 가뭄으로 저수량이 크게 떨어지면서 낙동강 원수를 공급받기로 결정했다.
이는 올해 마른 장마에 이은 폭염으로 인해 예년보다 강우량이 5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상수원인 사연댐과 대곡댐 저수량이 현재 26%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2%로 크게 떨어진 것도 주요 요인이다.
기상청은 "당분간 계속해서 덥고 습한 공기가 한반도에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낮에는 강한 일사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중부지방은 낮 최고기온이 33도, 남부지방은 35도 안팎까지 올라가는 무더위가
계속되겠고 열대야가 나타나는 곳도 많겠다"고 예보했다.
한편 전력거래소는 이날 오후 3시 피크시간대 최대전력수요가 7천261만㎾로 예비력 442만㎾(예비율 6.1%)를 유지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전 11시19분 순시예비력이 450만㎾ 미만으로 떨어져 전력수급경보 1단계 '준비'가 발령됐으나 다행히 경보 단계가 더 강화되지는 않았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14일이 이번 전력위기의 마지막 고비가 될 것"이라며 "산업체와 국민의 적극적인 절전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원전비리로 자초한 전력대란"…국민들의 불만도 폭발 직전
하지만 원전비리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로 전력수급 위기를 자초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도 폭발 직전이다.
현재 원전 23기 중 6기가 멈춰서 있다. 우리나라 전력의 31%를 차지하고 있던 원자력발전의 잇따른 가동 중단으로 올 여름 전력난은 이미 예고됐다는 지적이다.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전력난을 초래한 가장 큰 책임은 원전비리를 방조한 지난 정부에 있다"면서 "마치 국민이 전력난의 원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