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풀꽃나무이야기-알며느리밥풀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

제주CBS '브라보 마이 제주'(월-금 오후 5시 5분부터 6시,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에서는 매주 목요일 제주의 식물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알며느리밥풀'에 대해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를 통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알며느리밥풀 (촬영: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

장마도 끝나고 전국이 불볕더위입니다.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퇴근하면 초저녁부터 나가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올 여름은 예년에 비해 더 덥다고 하니까 모두 건강에 유의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에도 옛날 우리의 며느리들은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집안 살림을 하며 여름을 났습니다. 그렇다고 어디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이런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인지 며느리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식물이 간간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식물과 관련된 전설에는 우리 어머니들의 서글픈 인생사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꽃, 며느리밥풀이 그것입니다. 


그 가운데 요즘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며느리밥풀입니다. 사실 며느리밥풀류를 통틀어 보통 며느리밥풀 또는 며느리밥풀꽃이라고 하지만 그런 이름은 없습니다. 정확히 식물의 분류상 속명인 셈입니다.

며느리밥풀속에는 포에 가시 같은 털이 있고 포의 간격이 좁은 알며느리밥풀 외에 포가 녹색을 띤 삼각형이며 간격이 넓은 꽃며느리밥풀, 포가 붉은 빛이 도는 갈색이며 위쪽의 잎이 좁고 길쭉한 새며느리밥풀, 포가 녹색이며 잎이 긴  애기며느리밥풀, 포에 부드러운 털이 있으며 줄기가 적자색인 수염며느리밥풀 등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포와 잎의 모양이 뚜렷하여 쉽게 구분되는 것도 있지만 이름을 다르게 불러주는 것이 쉽지 않을 만큼 서로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여기서 기본종은 꽃며느리밥풀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제주에서는 알며느리밥풀이 더 많이 보입니다. 알며느리밥풀은 중부 이남에서 자라는 현삼과 식물로 반기생을 하는 일년생 풀꽃입니다. 잎은 달걀모양으로 생겼고 잎 끝은 길게 뾰족하며 꽃자루에는 잎몸과 더불어 짧은 털이 드문드문 나 있습니다.

8월이 되면 줄기 끝에 홍자색 꽃이 피기 시작하여 9월까지도 볼 수 있는데 간간이 흰색 꽃이 섞여있기도 합니다. 꽃은 무리지어 줄기나 가지 끝에 달려 있고 포는 좁은 달걀모양으로 다소 치밀하며 가장자리에 긴 가시털 같은 톱니가 있습니다. 꽃잎은 입술모양인데 아래 꽃잎에는 흰색 돌기 2개가 돌출되어 있습니다.

알며느리밥풀 (촬영: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
 
사실 밥풀 같은 흰색 돌기는 알며느리밥풀의 꽃가루받이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꽃이 피면 돌기가 처음부터 흰색을 띠는 것이 아니라 꽃이 성숙하는 속도와 맞물려 붉은 색에서 서서히 흰색으로 변합니다. 이것은 꽃가루받이를 할 때 곤충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알며느리밥풀의 전략으로 보입니다. 흰색의 돌기를 보고 곤충들은 꽃으로 달려들 것이고 그 과정에서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알며느리밥풀도 그렇지만 며느리밥풀속 식물들은 뿌리를 통해서 다른 식물로부터 양분을 흡수하는 반기생식물입니다. 그래서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다른 식물의 도움이 없이 다음해에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일년생 풀꽃이기 때문에 그 확률은 더 떨어질 듯합니다. 작년에 피었던 자리에서 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며느리밥풀이라고 하는 이름도 입술꽃잎의 흰 돌기에서 비롯됐습니다. 흰 돌기는 밥풀 2개를 물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어서 '며느리밥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이 꽃과 관련된 이야기가 내려옵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집살이 하던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저녁밥을 짓다가 밥알 몇 개를 떠서 뜸이 들었나 맛을 보다가 시어머니께 들키고 말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시어머니는 어른이 맛도 보기 전에 밥을 퍼먹는다고 때려서 쫓아냈고 며느리는 기진맥진하여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며느리가 묻힌 자리에는 밥알 두개를 물고 있는 붉은 색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며느리밥풀"이라는 것입니다.
 
알며느리밥풀의 학명은 Melampyrum roseum var. ovalifolium입니다. roseum은 장미의 붉은 색을 뜻하는 꽃며느리밥풀의 종소명입니다. 유럽의 며느리밥풀속(Melampyrum) 식물들은 노란색 꽃을 피우는데 비해 아시아에서 자라는 것은 붉은 색을 띠는 특징 때문에 종소명으로 쓴 모양입니다. 변종소명 ovalifolium은 둥근 달걀모양의 잎을 뜻합니다. 

결국 알며느리밥풀은 꽃며느리밥풀의 변종이며 잎이 달걀모양으로 생겼다는 뜻이 학명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밥풀을 한방에서는 산라화(山蘿花)라해서 약용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확실치 않으므로 함부로 쓰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며느리밥풀의 전설은 식물 이름에 '며느리'라는 붙었을 정도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심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며느리의 삶이 얼마나 기구했던지 며느리밥풀의 꽃말도 '여인의 한'입니다.

이제는 조금씩 옛이야기가 되어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여성들의 삶은 고단한 면이 많이 남아있음도 사실입니다. 지난 주 오랜만에 알며느리밥풀을 보고 왔습니다. 슬픈 전설을 간직한 꽃이어서 그런지 붉은색 꽃잎에 보이는 밥알 두개는 더욱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