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웅인이 국민 악당으로 등극했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섬뜩한 연쇄 살인범 민준국을 연기한 그는 MBC 시트콤 '세친구' 출연 이후 20여 년동안 갖고 있던 코믹한 이미지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웃지 않으면 후배들이 말을 걸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선배였던 대학시절(서울예대) 모습으로 돌아간 셈이다.
"'세친구' 성공 이후 코믹 이미지가 굳어졌지만, '너목들'로 악역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어요. 후속작도 악역을 연기할 것 같아요. 좋은 배우들과 좋은 제작진이 함께 하는 작품이라 선택하게 됐어요. 이렇게 작품을 하다보면 또 다시 좋은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요? 일단 기존 이미지를 희석시킨 게 만족스러워요."
정웅인은 '너목들'을 만나기까지 전까진 1년정도 공백 기간이 있었다. 그동안 영화 '전설의 주먹'에 출연하긴 했지만 4컷 정도에 불과했고, 배우 배종옥, 조재현 등과 함께 연극을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정웅인은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직면했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좋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고 기다려준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응축된 감정들이 '너목들'에서 폭발한 것 같다"고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왜 날 찾아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저 뿐 아니라 '너목들'에 출연하는 배우들이나 제작진 모두 이런 분노가 있었더라고요.(웃음) '너목들' 자체도 다른 방송국에서 편성이 불발되기도 했고요. 그런 감정들이 모여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고, 초토화시킨 것 같아요."
극중 자신을 친어머니처럼 아껴줬던 어춘심(김해숙)마저 극악무도하게 죽여 버린 민준국이다. 정웅인의 친 딸들마저 보기 힘들어했을 만큼 섬뜩한 연기였다. 그럼에도 정웅인은 민준국을 연기할 때 "악역이지만 악인처럼 연기하지 않으려 했다"고 고백했다.
"'죽여버릴꺼다', '꼬마야, 먹물 먹은 등신들도 내편인 것 같다' 등 대사 자체가 굉장히 센 편이잖아요. 굳이 눈을 부라리면서 힘을 주지 않아도 화면에는 세게 나올 꺼라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저만이 지을 수 있는 웃긴 표정들도 지었는데, 그게 더 무서워보였던 것 같아요. 수하(이종석)를 바라볼 때도 그윽하게 보고,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충실하려고 했죠."
대본 리딩 이틀 전에 캐스팅 됐지만 정웅인은 대본과 현장에 충실하며 자신만의 민준국을 완성해갔다. 그럼에도 "수많은 패러디가 만들어지고, 코미디 방송에서 언급될 만큼 큰 인기를 얻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며 "기분이 좋으면서도 놀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반응이 주변에서도 믿기 힘든가 봐요. 저와 함께 연극을 하던 조재현 씨는 '네가 뜨는 거냐'고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배종옥 씨도 부러워하더라고요. 요즘 '결혼의 여신'에 나오는 장현성 씨는 대학 동기인데, '우리의 존재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면서 기뻐했고요. 근데 요즘 현성이도 진짜 비열한 연기를 정말 잘하더라고요. 제 영향을 받아서인지.(웃음)"
정웅인은 1996년 SBS '천일야화'로 데뷔해 20년 가까이 연기자로 활약했다.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재발견'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민망한 배우다. 그럼에도 정웅인은 "'너목들'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것 같다"며 "이런 기회를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남자라면 자신을 믿어 준 사람을 위해 의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거든요. 단막극 'HAPPY! 로즈데이'를 출연하기로 한 것도 김영조 PD님 때문이에요. 김 PD님은 주변의 반대를 뚫고 저를 4부작 드라마 주연으로 쓰셨어요. 영화에서는 강우석 감독님이 그런 존재고요. '너목들' 조수원 PD님도 마찬가지예요. 전작이 거대하거나 대단하진 않았지만 저를 발탁해주신 만큼 카메오라도 출연할 용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