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어 허태열 비서실장을 사실상 경질하고 그 자리에 자신을 지지했던 원로그룹 7인회 멤버 가운데 한 명을 임명하고, 전직 외교관을 정무수석에 기용하는 파격이었다.
하지만 신임 비서실장이 국민들에게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 있는 1992년 초원복국집 사건의 당사자인데다 정치를 모르는 전직 외교관을 정무수석으로 기용함으로써 안하느니만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의 인사를 캠프인사 하듯이 한다"는 혹평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허태열 비서실장을 전격적으로 교체하고 후임에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3선 의원을 지낸 김기춘 전 의원을 임명했다. 두 달 이상 공석으로 있던 정무수석에는 박준우 전 주 벨기에·EU 대사를 기용했다.
곽상도 민정수석은 홍경식 전 법무부 법무연수원장으로 교체됐고, 최순홍 미래전략수석과 최성재 고용복지수석은 윤창번 전 하나로텔레콤 사장, 최원영 전 복지부 차관으로 대체됐다.
박 대통령이 허태열 비서실장을 임명한 시기는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 2월이었고, 이번에 교체된 4명의 수석도 모두 2월에 임명됐다. 그러니까 이들이 임명된 시점으로 보면 6개월, 새정부 출범으로 기점으로 보면 5개월여만에 청와대를 큰 폭으로 개편한 것이다.
인사 요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체된 허태열 실장과 3명의 수석들은 이래 저래 말들이 많이 있었다. 허태열 실장은 인사와 관련해 자기 사람을 챙기려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경고를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곽상도 민정수석은 초기 인사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이후에는 민정수석실 내부에서 잡음이 계속 일었다. 미래전략수석이나 고용복지수석은 업무추진에서 박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새로 임명된 사람들의 면면이다. 특히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과 박준우 정무수석에게 비판이 집중된다.
김기춘 신임 실장은 1992년 14대 대통령선거를 사흘 앞둔 12월 11일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서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등 부산지역기관장들을 불러 대책회의를 주도했다.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여당이던 민자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 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국민당 후보, 김대중 민주당 후보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 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다.
당시 대화 내용은 통일국민당측과 전직 안기부 직원 등이 공모해 감행한 도청을 통해 폭로됐는데, 녹음기에는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 등의 발언이 들어 있었다.
'김기춘 비서실장' 카드에는 자기 정치를 하거나 자기 사람 챙기지 않고 오로지 대통령을 위해 일할 사람을 쓰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묻어 있다.
김 실장이 올해 74세로 고령이어서 다른 정치적 마음을 먹기 어렵고, 부하를 거느리고 자기정치를 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있고 하니까 집안 살림만 할 사람으로 김기춘 실장을 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모양은 많이 안좋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되는 인사다"고 평가했다.
정무수석 인사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박준우 전 벨기에·EU 대사가 정무수석에 기용됐지만 여당내에서도 '박준우가 누구냐?, 여당이 모르는 정무수석이 있을 수 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야당에서는 '코미디 인사'라는 촌평이 나왔다.
정무수석은 당과 청와대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다. 요즘이야 예전처럼 당에 대한 청와대의 장악력이 강하지 않지만 이럴때 일수록 당청 관계를 잘 이끌어가는 게 중요하다. 참여정부가 초반부터 시끄러웠던 이유도 당청 관계가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무수석은 야당과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해야 하지만 외교관 출신이 단기간에 정치권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는 '메신저'에 머무르거나, 외교안보수석의 일을 일부 분담할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취임 첫해의 전반기와 후반기는 달라야 한다"며 "후반기에 보다 적극적인 정책추진과 새로운 출발을 위해 새 청와대 인사를 결정했다"고 박 대통령의 청와대 개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큰 과오가 없는 비서실장을 '팽'하듯이 경질하고 수석 비서관 7명 가운데 3명이나 교체한 것은 그동안 많이 지적됐던 것 처럼 애초부터 인사를 잘못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취임 원년 후반기에 새출발을 한다는 말 자체도 이상하지만, 이를 위해 단행한 비서진 인사가 흘러간 시대의 인사나 비전문분야의 인사로 채워진 것도 아이러니다.
5개월만에 이뤄진 이번 청와대 개편 인사는 박 대통령의 인재풀의 협소함과 충성심에 의존한 인사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다.